작년 이맘때쯤, 옛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신규 교사이던 2014년에 중3이던 학생이었다. 내 연락처를 어렵게 수소문했다며, 전화 너머에서 그 애가 수줍게 웃었다.
전화를 하며 느낀 건, 그 애는 더 이상 ‘애’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수업 시간에 꾸벅대며 졸다가 이따금씩 엉뚱한 발표를 함으로써 친구들을 즐겁게 하던 그 애는 어느새 20대 초반의 늠름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애는 선천적으로 시력이 좋지 못했다. 시각장애인인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교정시력이 비장애인처럼 좋게 나오지도 않았다. 그 애는 이른바 저시력인이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까. 그 애는 신규 교사인 나를 많이 도와주었고 잘 따랐다. 한번은 아침에 출근하는 나에게 선물이라며 주먹밥을 덥석 안겨 주기도 했다.
‘당근이 엄청 많이 든 주먹밥이에요. 당근이 눈에 좋은 거 아시죠? 저희 엄마가 싸 주셨어요.’
신규 교사로서 힘겨운 한때를 보내던 나는 그 애 덕분에 그 시절을 무탈히 건너 왔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청년이 된 그 애가 나를 만나고 싶어했다. 10년 만에 이어진 인연이었다. 지난 10년은 그 애를 청년으로 만들었고, 나를 중년 쪽으로 서서히 밀어내고 있었다. 나의 청년이 그에게 건너간 걸까. 나의 머리숱이 그 애에게로 넘어간 것처럼. 내가 변한 만큼 그 애도 많은 면에서 변해 있을 터였다. 나는 그 애가 보고 싶었다.
화창하던 시월의 토요일, 우리는 10년 만에 만났다. 그 애가 다니는 대학 근처가 약속 장소였다.
“선생님, 제가 맛있는 식당 예약해 놓았어요. 같이 가요. 안내해 드릴게요.”
더 이상 사춘기 소년이 아닌 그 애가 말했다.
그런데...
“근데 장갑은 왜 끼었어? 손은 왜 이렇게 꽉 잡고?”
그 애는 목장갑을 낀 손으로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아마 이런 식으로 안내해 주려는 것 같았다.
“장갑이요? 아무래도 남자끼리 손 잡고 걸으면 이상할 것 같아서요. 불편하시면 벗을까요?”
선한 말투로 그 애가 말했다. 나는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방법인 ‘안내 보행’에 대해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해 본 적이 없다면 모르는 게 당연했다.
안내 보행.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
스텝1: 안내인은 시각장애인보다 반 보가량 앞에 선다.
스텝2: 안내인은 자신의 팔꿈치를 시각장애인 쪽으로 내민 후, 시각장애인이 팔꿈치를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돕는다.
스텝3: 안내인은 팔꿈치를 시각장애인에게 잡힌 채, 반 보 앞서 걷는다.
스텝4: 안내인은 계단과 같은 장애물이 나올 경우 일단 멈춘 후, 시각장애인에게 피드백한 다음 다시 걷는다.
그 애는 목장갑을 벗고, 팔꿈치를 내게 내어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학습(?)을 곧잘 하는 똘똘한 녀석이었다.
우리는 걸으며 그 애의 대학 생활에 대해서,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그리고 그 애의 짝사랑에 대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다. 잡고 있는 팔꿈치를 통해 그 애의 젊음이 내게 수혈되는 느낌이었다. 그 애의 고민, 그 애의 짝사랑, 모두 내가 통과해 온 젊음 속에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지난날을 추억하며 그 애와 즐겁게 대화했다.
한편, 식당에 도착할 때 쯤, 그 애가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 왜 이렇게 팔을 살살 잡으세요? 제가 불편하세요?”
그 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 어떨 것 같아?”
“잘 모르겠어요. 불편하셔서 그런 것도 같고...”
“아니야, 좋아서 그래.”
“뭐가요?”
“너랑 걷는 게 좋아서 그래. 좋으면 살살 잡을 수도 있는 거야. 싫고 불쾌하면 신경질 나니까 꽉 잡는 거고. 그럴 것 같지 않아?”
나는 기시감을 느끼며 그 애에게 말했다.
이런 대화... 처음이 아니었다. 20년 전, 이렇게 대꾸했어야 했는데... 제자에게 대답하듯, 그녀에게도 이렇게 대꾸했어야 했는데... 나는 20년 전 대학 새내기 때 일을 잠시 생각했다. 당시 남 몰래 좋아하던 그녀를 떠올렸다.
“넌 왜 항상 내 팔을 이렇게 살살 잡아?”
나의 앞머리가 까지기 전, 풋풋하던 대학 새내기 때,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 무렵 그녀에게 흑심을, 아니, 연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닌데! 살살은 무슨...”
“아니야, 너 진짜 살살 잡아. 난 왜 그런지 알지.”
“왜, 왜?”
“날 못 믿어서 그래. 못 믿으니까, 나랑 걷는 게 불편하겠지. 맞지?”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던 듯싶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버버, 말을 잘 못하는 게 보통 아니던가.
‘아닌데! 좋아하는 사람 팔을 붙잡는 게 떨려서 살살 잡은 건데!’ 하고 대답할 용기가 없었다. 풋내 나던 스무 살이었던 까닭이다.
제자의 젊음에 동화된 탓인지, 나는 잠시 동안 스무 살 그녀를 추억 속에서 보았다. 그걸로 족했다.
“너랑 걷는 게 좋아서 그래. 좋으면 살살 잡을 수도 있는 거야.”
내가 제자에게 말했다.
“아... 네! 이제 알겠어요.”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의외로 시각장애인마다 팔꿈치를 잡는 강도가 달랐고, 비장애인들은 가끔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는데,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Case by case. 팔꿈치를 잡는 강도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안내인의 마음 모두 그때그때 달랐다.
그 애 덕분에 옛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그녀도 시각장애인을 볼 때면, 또 안내 보행을 할 때면, 가끔 나를 떠올릴까. 뭐, 알 수 없지. 뭐, 상관없지.
시각장애인을 안내한다는 건, 잠시나마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다는 것 아닐까.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연결된 채 발걸음을 맞추어 걷는다는 건, 마음의 연결 없이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팔을 내어 주지 않는다. 또 싫어하는 이의 팔을 붙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안내 보행’은 마음과 마음의 도킹이 아닐는지.
그녀와의 도킹도, 그 애와의 도킹도, 내겐 모두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