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삼열 Nov 06. 2023

도서관에서 꼭 한번 하고 싶은 일


  이따금 학교 도서실에서 독서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햇볕 받은 병아리들처럼 꾸벅꾸벅 졸 때가 있다. 나는 학생들의 잠을 쫓기 위해 퀴즈를 내곤 하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선생님이 죽기 전에 도서실에서 꼭 해 보고 싶은 일이 있어. 그게 뭔지 알아?”

  이건 급조한 질문이 아닌,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여러 가지 답을 내놓는다.

  “삼겹살 구워 먹기?”

  “키스하기!”

  “대자로 누워 자기.”

  “소리 지르기.”

  “연애하기?”    

  학생들은 자기가 도서실에서 하고 싶은 일을 앞다투어 말한다.

  그나저나 연애라... 내가 도서실에서 연애 한번 못 해 본 사람처럼 보이나? 왜지?

  “얘들아, 선생님은 도서실에서 연애했고, 그 사람과 결혼했어.”

  이쯤 되면, 잠이 어느 정도 깬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내가 도서실에서 꼭 한번 해 보고 싶은 일은...”

  “...”

  “아무 책이나 빌려서 읽어 보는 거야. 점자책이나 전자도서 말고, 그냥 인쇄된 책.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런 책.”

  이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      


  당연하게도, 시각장애인들은 대개 활자로 된 책을 읽지 못한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독서할까? 아마 당신은 ‘점자책’을 떠올렸을 것 같다.

  시각장애인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책을 읽는다.   

  

  첫째, 당신이 생각한 대로 ‘점자책’을 이용한다.     

  장점: 점자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릴 수 있다. 전화로 책을 신청하면, 택배로 점자책을 보내준다. 택배비는 물론 받지 않는다.   

  단점: 책의 부피가 너무 크다. 보통 300페이지짜리 소설을 점자책으로 만들면 몇 천 페이지는 기본으로 나올 정도이다. 그래서 휴대하거나 소장할 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리고 점자책은 그 수가 상당히 적다. 점자책을 만들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 및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다수의 점자책을 제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점자책 한 권이 제작되기 위해서는 보통 몇 달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둘째, 스캔도서를 이용한다. 고속 북스캐너로 책을 스캔한 후, 결과물을 텍스트 파일로 변환하여 음성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는 컴퓨터로 독서하는 것이다.

  장점: 신간 도서와 같이,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그때그때 제작하여 읽을 수 있다.

  단점: 생각보다 많은 품이 들어간다. 일단 쓸 만한 북스캐너를 구입해야 하고, 재단한 책을 한 장 한 장 스캔해야 하며, 그림 파일을 텍스트 파일로 만드는 데에도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보통 한 권의 책을 텍스트 파일로 만드는 데에 수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과정을 전문 업체에 맡길 수도 있는데, 비용이... 책값보다 더 들어간다.     


  셋째, 전자도서를 이용한다.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시각장애인도 전자도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앱에 내장된 TTS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고,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음성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독서할 수도 있다. 

  장점: 많은 수의 전자도서 중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독서할 수 있다. 점자도서나 스캔도서의 경우 그 수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서, 읽고 싶은 책을 독서할 수 없는 것에 반해, 전자도서는 그러한 단점이 없는 편이다.

  단점: 대형 서점에서 만든 독서 플랫폼일지라도, 장애인을 위한 웹접근성 혹은 앱접근성을 지키지 않은 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독서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오히려 중소기업에서 만든 독서 플랫폼이 장애인을 더욱 배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소기업에서 만든 플랫폼에는... 책이 별로 없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나는 독서해 왔고, 수능과 교원임용시험 등을 공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꿈은... 여전히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여 독서해 보는 것이다.

  스캔도서나 전자도서도 좋지만, 나는 뭐니 뭐니 해도 오래된 도서관에서 풍기는 종이 냄새, 세월의 흔적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단순히 책 한 권을 빌려 읽고 싶은 게 아니라, 책이 지나온 세월을 잠시라도 대여해서 품어 보고 싶은 것이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활자 책을 한아름 빌려 읽는 날이 오면 좋겠다.     


  “선생님, 제 학생증으로 책 빌려 드릴까요?”

  “고마워, 마음만 받을게. 근데 책 좀 읽자. 독서 시간에 엎드리지 좀 말고.”                  

  나는 오늘도 내가 읽을 수 없는 책들에 쌓여, 내가 읽을 수 없는 책을 아이들에게 읽힌다.         




이전 12화 선배! 떡볶이 먹고 갈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