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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삼열 Oct 20. 2023

선배! 떡볶이 먹고 갈래?

클리셰는 없다


  김연수 소설가는 도서 ‘소설가의 일’에서 소설 작법 중 하나인 ‘설마!’와 ‘하필!’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이 기법은, 소설가는 소설 도입부에서 독자로 하여금 ‘에이, 설마 블라블라한 일이 벌어지겠어?’ 하는 의문을 품게 해야 하고, 추후에 독자에게 ‘하필! 이때 블라블라한 일이 벌어질 게 뭐람!’ 하는 충격을 안겨 주어야 한다는 소설 작법이다.      


  나는 이 기법을 ‘클리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으로 이해했다(김연수 소설가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클리셰로 인해 너무도 뻔한 전개가 예상될 때 우리는 ‘에이, 설마!’를, 그 흔한 전개가 경로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왜 하필 이때!’를 떠올리지 않던가.     


  내가 지금부터 할 얘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클리셰’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설마’와 ‘하필’을 떠올리며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2000년대 초반, 내가 대학 3학년 때 일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난 자리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2학기 10월 경이었다.  

  새벽에 가까운 늦은 밤,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막 잘 준비를 하던 나는 메시지를 확인한 후 조금 놀랐다.     


  ‘선배, 자? 아직 안 자면 떡볶이 먹고 갈래? 혼자 먹기가 싫어서.’   

  얘가 웬일이지? 느닷없는 시각에 갑자기 떡볶이라니! 생뚱맞았다. 

  참고로 그때만 해도, 클리셰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라면 먹고 갈래?’ 류의 대사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야 말로 옛날 옛적이었다.       

 

  다이어트 하다가 폭식증이 돋았나? 아니면, 돈이 없는데 야식이 먹고 싶은 건가? 그것도 아니면, 혹시 나한테 관심 있나? 에이, 설마 그럴 리가! 그냥 술에 취한 건가? 그러고 보니, 술 한 잔 하고 싶네.                

  나는 애써 ‘설마’를 머리에서 지우고, 답문을 보냈다. 

  ‘술도 있어? 5분 후에 볼까?’   

  ‘술 많아. 선배 집 앞으로 갈게. 준비하고 나와.’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원룸 밖으로 나갔다. 곧 그 애가 슬리퍼를 끌며 나타났다. 비닐봉투 안에서 술병이 쨍그랑거렸다.               



  그렇잖아도 잘 안 보이는데, 가로등까지 듬성듬성 켜져 있어서 발밑을 조심하며 걸었다. 몇 분 걷지 않아 그 애의 자취방이 나왔다. 낮에 여럿이서 방문한 적은 있지만, 밤에 혼자 오는 건 처음이었다. 떡볶이 냄새가 방 밖까지 풍겼다.     


  내가 사는 원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방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있는 집 딸내미였던가 보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화장실이, 왼쪽에 개수대가, 앞쪽에 중문이 있었다. 떡볶이는 중문 안쪽 식탁에 놓여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떡볶이를, 순대를, 튀김을 먹었다. 잘 시각에 먹는 야식은 짜릿하게 맛있었다. 술도 따라주는 대로 덥석덥석 마셨다. 술자리 분위기가 좋았다. ‘이거 설마가 사람 잡는 거 아니야?’ 하며 열심히 먹고 마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애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술을 안 마신다? 왜지?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희한하게 조신하네? 말수도 별로 없고... 초조해 보이기까지 해! 뭐지? 수상했다.      


  “너... 나한테 말 안 한 거 있지? 뭔데 이래?” 

  “선배, 어떻게 알았어?”

  나는 스무고개하듯 비밀을 캐물었지만, 그 애는 끝내 실토하지 않았다. 번번이 ‘부끄러워서 말 못하겠어.’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부끄럽다라. 얘가 정말 날 좋아하기라도 하나? 말도 안 돼. 수상해, 정말.         


  가을밤이 깊어갔다. 귀뚜라미가 울었고, 풀벌레가 노래했다. 술이 있었고, 안주가 많았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그 애가 있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밤이었다.   

  수상하거나 말거나, 먹고 마시다 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미안, 화장실 좀 써도 될까?”    

  “아니.”

  “?”

  “화장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

  안 될 거야 없었다. 아주 급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정말 이상하네. 

  그렇게 한 시간여가 지났다.    

  더는 먹을 것도 없고, 무엇보다 화장실 생각이 간절했다.      


  어느새 술자리의 흥이 절정을 지나 가라앉고 있었다. 달도 새벽으로 기울어 있을 터였다.  

  ‘설마는 무슨!’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이런 새벽에 대체 누구지?

  잠시 후, 비로소 나는 상황 파악이 되었다. 마침내 그날 밤의 일이 환하게 그려졌다. 설마는 개뿔!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화장실을 손보러 온 기술자분이었다. 변기가 막혔던가 보았다. 후.배.님이 반가운 임을 맞이하듯 기술자를 맞이했다.

  “선배! 지금 몇 시야?”

  중문 밖에서 그 애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물었다.

  “어, 한 시 반인데.”

  나는 어딘지 김샌 말투로 대꾸했다. 지금 필요한 건, 남자의 목소리일 터였다. 야심한 시각에 혼자 있지 않다는 증표가 필요했겠지. 

  “고마워. 금방 들어갈게.”

  그 애가 고마워했다. 왠지 헛웃음이 나왔다. 

  ‘하필 화장실이 막혀 가지고는. 사람 잠도 못 자게. 그래도 떡볶이는 맛있었어.’      

  혼잣말하는 사이에 그 애가 들어왔다. 시원하게 뚫린 모양이었다. 변기도, 그 애의 속도.      


  아마 그 애는 이렇게 생각했겠지.

  ‘설마 선배가 화장실 가고 싶은 건가? 이 상황에? 왜 하필이면 지금!’

  두 개의 설마와 두 개의 하필. 재미있는 해프닝이었다.

  그리고 설마고 하필이고, 야심한 시각의 야식 파티는 그걸로 끝이 났다.

  함구할 것을 부탁하지도, 약속하지도 않았지만, 그날 밤 일은 자연스럽게 비밀이 되었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실존(존재)은 본질에 우선한다.’라고 했는데,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그날 밤 나의 실존(존재)은 가치로웠고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그 야심한 밤 그 애에게 필요한 건 온기를 가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을 테니까. 설마와 하필을 넘어, 온기를 가진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부름 받은 것만으로 나의 젊음과 나의 실존은 가치로웠다. 

  그랬겠지?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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