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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삼열 Dec 31. 2023

폭설 속에 갇힌 밤

    

  2002년,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기말고사가 끝난 무렵, 그러니까 12월 경에 큰 눈이 내렸다. 갑작스런 폭설에 교통이 마비되었고 사회가 큰 혼란에 빠졌다. 


  “지금 대중교통이 운행을 멈춰서 집에 못 가게 됐다. 통학생들은 기숙사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귀가한다.”

  담임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말씀하셨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속으로 ‘아싸, 개꿀!’을 외쳤다. 

  파주에서 종로까지 매일 통학하던 나는 로망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기숙사에서의 하룻밤이었다.

  참고로 서울맹학교와 같은 특수학교는 대부분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특수학교는 일반학교와 달리 동네마다 있는 게 아니어서, 멀리서 등하교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들 모두가 통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 규정상, 평소에 통학생은 기숙사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교 후에는 뭐랄까... 통학생과 기숙사생이 자연스레 나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런 까닭에 나의 풋사랑은 심히 방해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통학생, 그 애는 기숙사생. 학칙은 우리를 방해하는 악법(?)이었다.    


  마이크 타이슨 형님의 말처럼, 나에게도 근사한 계획은 있었다. 운명의 장난 앞에 처맞기 전까지는 그랬다.

  ‘기숙사 식당에서 같이 밥 먹고, 교실에 가서 숙제도 오붓하게 하고, 그 김에 인생 공부(?)도 좀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처음 얼마간은 순조로웠다. 

  같이 저녁밥 먹기. 클리어!

  다음. 오붓하게 교실에서 숙제하기. 클리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인생 공부하기(?). 대폭망!


  저녁 여덟 시 경, 우리는 불 꺼진 교실 창가에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내리는 눈의 양을 가늠해 보았다. 손에 와 닿은 눈이 쨍하게 차가웠다.

  “너를 생각하는 내 마음만큼이나 눈이 많이 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뭐 이런 말을 주워섬기지 않았을까? 그날 우리가 나눈 대화는 눈 속에 파묻혀 버렸지만, 그날 손에 닿은 눈의 감촉만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게 청소년기에 허용되는 밀담을 주고받던 중...

  느닷없이 쩌렁쩌렁하게 교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제삼열 학생, 제삼열 학생!”

  귀를 때리는 방송 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뭐지? 왜 내 이름을 저렇게... 다급하게 부르지?’

  우리는 인생 공부를 그만두고 바짝 긴장했다.

  “제삼열 학생은 지금 바로, 지금 바로, 기숙사 사감실로 오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방송 소리가 너무 컸다. 학교 앞 분식점까지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학교에서 연애질하는 게 들통난 건가? 그런데... 왜 내 이름만 불러대지?’

  우리는 죄 지은 사람들처럼 황망히 교실에서 나왔다.      

  그 애는 여자 기숙사로 돌아가고, 나는 부랴부랴 남자 기숙사 사감실로 향했다. 그런 와중에도 방송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무슨 중죄를 저질렀다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유를 알고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난리가 난 건, 기숙사에 사는 선배가 나의 실종을 사감 선생님에게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폭설에 무슨 사고라도 생긴 줄 아시고, 다급하게 교내 방송까지 하셨단다. 

  ‘내가 눈에 파묻히기라도 했을까봐?’ 

  그렇다면, 그 선배는 후배 사랑이 넘치는 좋은 선배인 걸까? 글쎄... 선배는 하룻밤 묵어가기로 한 통학생이 저녁 늦도록 방에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이 되어서 신고한 것이었다, 는 아니고...

  같이 먹으려고 족발을 시켰는데, 내가 없어서, 족발이 식을까봐 신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말도 믿을 수가 없다.     


  “술?”

  족발 앞에 놓인 소주병을 만지며 내가 말했다.

  “그래, 술. 오늘같이 눈 오는 날엔 술 한잔! 알지? 근데 너 말이 좀 짧다?”

  덩치 큰 선배가 말했다.

  “학생이 술 마셔도 돼요?”

  “한 잔은 괜찮아. 형들이 다 마실 테니까, 너는 딱 한 잔만 마셔.”

  덩치가 작은 선배가 말했다.     

  선배들은 그냥 술이 마시고 싶었던 것 같다. 기말고사도, 수능도 모두 끝났으니, 그냥 한잔하고 싶었겠지. 매일 둘이서만 마시다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으니 신이 좀 난 듯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날 밤, 인생 공부는 그 애가 아닌 기숙사 선배들과 했다. 


  “우리, 특수교육학과에 원서 낸 거 알지?”   

  덩치 큰 선배가 말했다.

  “아뇨. 특교과 갈 거예요?”        

  “형들이 먼저 가서 터 닦고 있을 테니까, 내년엔 네가 입학해라.”

  “특교과 어때요? 전 사실 사범대 말고 다른 대학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쯧쯧, 하룻강아지 같은 놈!”

  선배들이 한 수 가르쳐 준다는 식으로 썰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고3의 내공이란 건 이런 것인가 하며 귀 기울여 들었다.   

  “근데 대학에서 형들 받아준대요?”

  우리는 밤늦도록 진로에 대해 얘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각장애인이 가질 수 있는 직업, 시각장애인에게 열려 있는 학과는 참... ‘드물다’라기보다 참 ‘없다’에 가까운 것 같다. 


  그 후, 그 선배들은 정말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했고, 대학 4년 동안 기숙사 룸메이트로 동거 동락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옆에서 줄곧 보아왔기 때문에 잘 안다.

  나는 같은 대학 국어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냥 그 선배들을 따라 특교과에 입학하고 싶지 않았다. 장애인이라면 으레 특교과에 진학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어쩐지 다른 길을 가 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교내 방송하기 전에, 기숙사로 얼른 뛰어와라. 족발 식는다.’

  대학에 가서도 이런 메시지를 보내오던 형님들은... 지금 전라도에서 함께 특수교사로 일한다. 직장은 같은데, 그리고 거주하는 오피스텔도 같은데, 이제는 룸메이트가 아니다. 층을 달리해서 따로 산다. 하긴, 그렇게 붙어 살았으면 질릴 때도 됐겠지. 서로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게, 층을 달리해서 사는 거라니... 재미있는 분들이다.       


  나는 그날의 폭설에 감사한다. 전적으로 그 폭설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사범대에 진학한 것, 그리고 국어교육학과를 전공한 것은 어느 정도 그날 밤에 영향 받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공짜 술을 먹이며 열심히 진로에 관한 썰을 풀어 준, 이런저런 고민을 들어준 형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한편, 밥을 같이 먹고 숙제를 함께 했던 그 애와는... 그날 밤 이후 사이가 소원해졌다. 그날 밤 우리가 서로 나누었던 마음은 폭설 속에 묻혀 버린 채 이제는 더 이상 찾을 길이 없어졌다. 그 덕분에 남은 1년을 고3으로서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하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그때는 아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아픔 덕분에 더욱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말하면, 그때의 나에게 너무 예의 없고 몰염치한 말을 하게 되는 걸까.


  아직도 겨울에 폭설이 내릴 때면, 나는 20여 년 전의 그날 밤을 떠올린다. 나의 풋사랑이, 소주 한잔의 추억이, 진로에 관한 뜨거웠던 말들이, 아직 눈 밑에 얼어붙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한다. 마치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하얀 눈 밑에 소중한 추억이 언제까지나 잠들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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