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안 보인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인가요?”
시각장애인으로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심심찮게 들은 질문이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길거리에서... 때로는 조심스럽게, 또 가끔은 ‘식사하셨어요?’처럼 자연스럽게. 악의 없는 물음을 들을 때면, 어쩐지 한동안 멍해지곤 했다. 나조차도 ‘대체 어떤 느낌이지?’ 자문하게 되고, 대답할 말을 고르기가 궁색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신다.
“왜 여쭤봤냐면, 사실 저도 눈이 되게 안 좋거든요. 비문증이에요. 항상 눈앞에 날파리 같은 게 떠다닌다니깐요.”
비문증 대신 백내장을, 마이너스 시력을, 안구 건조증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다.
“저야 뭐, 안 보이는 게 익숙하지만. 마이너스 시력이라 불편하시겠어요.”
이런 대답을 할 때마다, 나는 ‘그래도 안경을 쓰면 시력이 교정되는 게 어디예요. 저는 그것마저 안 돼서!’ 하는 사족을 덧붙이곤 하는데, 그러면 상대방은 머쓱해하거나 쿨하게 인정해버리거나 한다. 그 다음 대화 주제는 비문증이나 백내장 따위가 되기 일쑤이다.
한동안 티키타카가 이어지고,
“아, 저도 선천성 녹내장 말고, 차라리 비문증 같은 걸 갖게 되면 좋겠어요. 그래도 저보다는 훨씬 나으신 거예요.”
“내 정신 좀 봐. 안 보이는 분 붙잡고 제가 별말을 다했네. 주책이라니깐요!”
“아뇨, 덕분에 재밌는 대화 나눴는걸요!”
대화는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된다. 그러면 된 거지, 뭐. 상대방이 속시원하게 하소연했다면, 그리고 짧은 대화로 인해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면, 서로 유익한 시간을 보낸 게 아니겠는가.
나도 저와 같이 하소연하고 싶은 순간, 위안을 얻고 싶은 때가 있었던 까닭에, 결코 기분 나쁘거나 주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녹내장을 탯줄처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이 녹내장이란 녀석은 탯줄과 달라서 잘라 버릴 수가 없다는 게 함정! 아주 결정적인 함정이자 단점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죽을 때까지 삶의 동반자로 여기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될 때까지 함께 가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함께 가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 녹내장이란 녀석은 그리 녹록한 놈이 아니다. 이 병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병세가 진행해 나아간다는 게 큰 문제이다. 예컨대 시력이 0.1에서 0.05로, 다시 0.01로, 종래에는 실명으로 진행해 나아가는 것이다. 오죽하면 녹내장을 ‘소리 없는 실명’이라고 부를까.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점차 병세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마침 속내를 털어놓기에 맞춤한 지인이 한 명 있었다. 우리는 ‘탈모’라는 아픔을 공유하는 동변상련의 관계였기 때문에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는 아니고, 그냥 부처님 같은 형님이어서 그랬다.
어느 날은 대뜸 전화해서,
“형! 나 이제 큰 글씨도 잘 안 보여. 확대경을 들이대도 책을 볼 수가 없어. 나, 공부는 어떻게 하지? 이런 눈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가지?”
하고 푸념했고, 또 어느 날은 불쑥 찾아가서는,
“형! 이제 혼자 택시 타는 것도 어려워. 예전보다 눈부심도 심해졌고, 시력 측정도 잘 안 될 정도로 진행이 많이 됐어. 답답해서 어떻게 살지?”
하고 죽는소리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그 형님은,
“많이 답답하겠다. 형도 요즈음 건강이 안 좋아. 그래도 네가 형보다는 낫지 않겠니?”
말했는데, 그때는 그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바보같이.
“형도 어디가 안 좋아? 왜, 머리가 더 빠져?”
“이놈아, 그게 아니라...”
우리의 대화는 대게가 이런 식이었다. 주로 내가 푸념했고, 많은 경우 형님이 위로하는 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은 내가 물었다.
“형! 빛조차 안 보인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이야? 형은 예전에 비장애인이었잖아. 빛이 점차 없어지는 느낌은 어때?”
그랬다. 부처님 같은 형님은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질환으로 인해 시력을 잃어버린, 빛조차 볼 수 없게 된 중도 시각장애인이었다. 나보다도 시력이 더 좋지 못한, 그야말로 중증의 시각장애인인 것이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저시력인이 되고, 끝내 실명에 이르게 된 형님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내 질문에 형님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형님이 뜸을 들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그건 말이야... 머리카락이 점점 없어지는 느낌 곱하기 1만 배쯤 되려나? 그러니까 너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 때 많은 걸 봐 둬. 그게 좋아. 너한텐 아직 시간이 남아 있잖아.”
탈모 선배이자, 실명 선배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넸다.
아,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건 정말이지 무섭고도 굉장한 거구나. 탈모 곱하기 1만 배라는 거지? 그러니까 실명 전에 뭐라도 많이 봐 두고, 세상이 어두워졌을 때를 대비해서 마음의 빛을 듬뿍 담아 두라, 이거지? 과연 먼저 빛을 잃은 선배가 후배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었다.
탈모 선배에게서 이런 류의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 한 편에서 작은 불씨가 피어나 온몸을 따스하게 덥히곤 했다. 실명 따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관계가 좋았고, 선배한테 듣는 생생한 경험과 조언도 나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형님을 찾는 이유인가 보았다.
나는 형님에게서 받은 불씨를 옮기며 살고 싶다. 작고 보잘것없는 불씨일 따름이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잠시라도 언 몸을 녹이게 할 불씨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대체 안 보인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라는 물음이 느닷없이 날아들어도, 결코 기분 나쁘거나 주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 내게 쭈뼛거리지 않고 실명에 대해 묻기 바란다. 실명 이후의 삶을 그와 함께 얘기하고 싶고, 실명 이전의 내가 보아온 것들에 대해 즐겁게 대화하고 싶다. 마치 탈모 형님이 내게 그러했듯이. 그러한 과정에서 작은 불씨가 여기저기로 옮겨붙고 타오르길 바란다. 흡사 세상을 여행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