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삼열 Nov 02. 2023

구급차에 관한 단상


  얼마 전, 뉴스를 보았다. 유명 연예인이 사설 구급차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뉴스였다. 구급차를 타고 행사장에 간 것이 문제였다. 구급차 운전기사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연예인은 벌금형에 처해졌다.

  씁쓸했다. 뉴스를 보는데, 불현듯 예전에 다쳤던 다리가 아파왔다.       


  15년 전, 겨울밤이었다. 나는 빙판길에 넘어져서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가 꺾여 버렸다. 넘어지면서, ‘이거 정말 큰일났다.’ 싶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몇 분가량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빙판 위에 엎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조금만 가면 집이었다.  

  다치지 않은 한쪽 다리에 힘을 싣고, 거의 기다시피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겨우 바닥에 퍼질러 앉아, 다친 다리를 살살 만져보았다. 비명이 나올 정도로 통증이 컸다. 

  다리가 단단히 잘못된 듯했다. 시간이 지난다고 나을 것 같지가 않았다. 찜질로 어떻게 나을 통증이 아니었다.     


  휴대전화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머리털 나고 생전 처음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라도 찍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119 접수 대원은 증상에 대해 물었고, 혼자 있는지 아니면 보호자와 함께 있는지 등을 물었다. 나는 혼자 살고 있으며, 중증 시각장애인이라고 대답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구급대원 두 분이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러고는 다리를 살살 눌러보셨다. 나는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환자분! 다리가 부러진 것 같은데요?”   

  나도 안다고, 그것도 20분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들것에 누워 밖으로 이동했다. 추운 날씨에 다리까지 아파서 이가 덜덜 떨렸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으려니, 세상이 거꾸로 도는 것같이 어지러웠다.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후, 엑스레이를 찍었다. 보호자가 동행하지 않았으므로, 간호사님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다행입니다.”

  엑스레이 필름을 보며 의사가 말했다. 

  “많이 다치진 않았나요?”

  나는 한시름 놓으며 물었다.

  “뼈가 아주 깨끗하게 부러졌어요.”   

  “!”

  나는 의사양반이 나를 놀리나 했다.

  “지저분하게 부러지면 수술을 해서 뼈 조각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어요. 단면이 아주 깨끗해요. 한 번에 팍 넘어지셨나 봐요? 넘어지려면 그렇게 넘어지는 게 차라리 낫지요.” 

  “감사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사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고 인사해 버렸다. 사실 감사한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선생님, 저 입원해야 하나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입원이요? 왜요?”

  “뼈가 제대로 부러졌다고 하셨잖아요.”

  “10분 후에 집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깁스만 해드릴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낫습니다. 젊은 분이라 빨리 나으실 거예요. 두 달 정도?”

  두 달! 빨리 나으면 두 달! 아찔했다. 눈도 잘 안 보이는데, 깁스하고 어떻게 살지? 흰지팡이도 못 짚고, 도와 줄 가족도 없고, 큰일이었다.   

  아, 골절상이란 건 이런 거구나. 나는 처음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나, 어떻게 집에 가지?’

  병원에서는 목발을 대여(?)해 주었지만, 시각장애인이 목발을 짚고 혼자 집에 갈 수 있겠는가? 집에 가려다가 필시 골로 갈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한 번 119에 전화 걸었다. ‘보호자가 없는 중증 시각장애인이고, 여차저차해서 다리가 부러졌는데, 흰지팡이와 목발을 동시에 사용할 수가 없으므로 집에 갈 수가 없다.’는 말을 두서없이 했다. 그런데...

  “규정상 병원으로 갈 때만 구급차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집에 가실 때는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예외 없는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정말 큰일이었다. 너무나 답답했다.

  “제 상황이 응급하지 않나요? 시각장애인이 혼자 목발과 케인을 짚으며 집에 가야 하나요?”

  “규정상 병원으로 이동할 때만 구급차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벽에 대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만 끊겠습니다.”

  접수 대원은 사정을 설명하는 내 말을 끊고, 전화 통화를 종료해 버렸다.

  너무나 화가 나고 답답해서 몸이 떨려왔다.     


  “다른 방법이 없으시면...”

  옆에서 듣고 있던 병원 관계자가 말씀하셨다.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 보세요. 집까지 모셔다 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 비용이... 15만원 정도 나오세요.”

  나는 텅 비다시피 한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사설 구급차. 빛 좋은 개살구였다. 15만 원! 당시 나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무슨 놈의 제도가, 규정이 이렇지? 예외 규정도 없나? 내가 이대로 병원 밖으로 나가면, 몇 분 만에 더 크게 다칠 게 뻔한데, 그걸 알면서도 도와줄 수 없다는 거야?’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했다. 약자에게 엄격한 대한민국이었다.    

 

  지난 일을 회상하며, 다쳤던 다리를 만져 보았다. 부러졌다가 붙은 뼈는 미세하게 결이 달랐다. 

  연예인을 태워준 구급차 운전기사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해당 연예인은 벌금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씁쓸했다. 

  벌금 500만 원. 과연 유명 연예인에게 얼마만큼의 가치일까. 15년 전, 내가 지불하지 못한 15만 원과 2023년, 그가 납부한 500만 원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나는 우리의 법과 규정이 보다 정의롭게 적용되길 바란다. 법과 규정이 ‘윤리’에 뿌리 내리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약자에게만 엄격한 규정, 가치가 전도된 규정은, 폭력이 물구나무서기 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이전 16화 안 보이면 어떤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