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사가 되기 전, 그러니까 고시생일 때, 국어교육론을 강의하던 강사님이 일화 하나를 들려주셨다. 그분이 저경력 강사일 때 경험한 일이라고 한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적어도 검정고시 출신은 없잖아요? 이 문제는 정상적인 공교육을 받았다면 다 풀 수 있는 난이도니까, 설명 없이 넘어가겠습니다. 괜찮죠?”
별생각 없이 강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세 시간여의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수강생 한 명이 교단으로 다가오며,
“교수님, 죄송해요. 제가 검정고시 출신이라... 이 문제가 어려워요. 설명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말했단다.
대략 난감해진 강사님은,
“맞아, 이 문제 좀 어렵지? 쉬워 보이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문제야. 내가 설명해 줄게, 저기 앉아 봐.”
과도하게 친절하고 밝은 모습으로 열변을 토하셨다고 한다. 한겨울이었는데, 등에서 땀이 주르르 흐를 만큼 당황하셨단다.
이 경험을 소개해 주시며 강사님은,
“여러분은 저를 반면교사 삼아, 바보 같은 실수하지 마세요. 교사는 항상 말조심, 입조심해야 돼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학생들은 다양하고 다채롭다는 걸 잊지 마시고요.”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당한 말씀!’
하며 한 귀로 흘려 들었다. 그런데... 내가 강사님과 비슷한 실수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일은 3월 첫날 벌어졌다.
나는 항상 첫 수업에서 나를 소개하는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장애인을, 그것도 장애 교사를 교실에서 마주하는 건, 아직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아주 드문 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주로 다음과 같은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나에 대해 설명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슬라이드를 띄워 놓고, 이렇게 말했다.
“자료에서 보듯, 전체 인구 중 5퍼센트 이상이 장애인인데, 왜 이 교실에는 나밖에 장애인이 없는 걸까? 통계상 두 명 정도는 장애인이어야 하잖아?”
학생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자유롭게 말해 봐. 여기 선생님 말고 장애인이 또 있니? 있으면 손 들어 봐.”
침묵.
“거봐. 여긴 건강한 사람들만 모여 있잖아. 그만큼 장애인이 공교육 현장에 나오기가 어렵다는 거고,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기가 곤란하다는 거야.”
나는 준비한 말을 습관적으로 해댔다. 오랜만에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조금은 피곤했고, 첫 수업인 만큼 긴장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한 학생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예의 바른 태도를 가진 여학생이었다.
“선생님, 제가 교실 뒤쪽에 앉아 있어서요. 아까 보여주신 자료들을 하나도 못 봤거든요. 혹시 홈페이지에 올려 주실 수 있으세요?”
첫 수업에서는 나에 대한 내용들뿐 아니라, 한 학기 진도 계획이나, 수행평가 계획, 시험 관련 내용들을 자료로 보여주는데, 그것들을 함부로 홈페이지에 올릴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계획일 뿐이라, 추후에 얼마든지 수정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 자료를 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아. 옆 반 선생님과도 상의해야 하는 부분이라 곤란해. 메모하라고 한 부분들, 필기 안 했니?”
안타깝지만, 원칙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 친구들은 모르는데, 사실은 제가 시각장애 6급이라서요... 제 자리에서는 스크린이 하나도 안 보여요.”
그 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교실에 장애인이 두 명 있는 거, 맞아요, 선생님.”
아뿔싸! 초봄이었건만, 등에 땀이 차올랐다. 장애인이 있으면 손 좀 들어 보라니... 그런 막말을 내뱉은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도, 바보 같은 말을 내뱉은 셈이었다. 내가 그 애였어도, 그 상황에 손을 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음의 상처만 받았을 것 같았다.
“교무실로 같이 가자. 자료들, 몽땅 인쇄해 줄게.”
그 후, 나는 조금 더 입 조심하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장애인, 혹은 한부모 가정의 아이, 교우 관계가 좋지 못한 학생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한데 섞여 있다는 걸 내면화했기 때문이었다. 가능한 한, 진땀나는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여린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그 학생과는 꽤나 돈독한 사이로 지냈다. 그 애도 나를 많이 도와주었고, 나도 할 수 있는 한 그 애를 배려하면서 가깝게 한 해를 보냈다.
그 반에 들어갈 때면, 화면에 띄워 놓은 자료를 일부러 한 줄 한 줄 읽어 주었고, 프린트물을 나눠 줄 때도 글자 크기를 조금 더 크게 인쇄해서 배부하였다.
이런 것이 특별한 배려일 수는 없었다.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과정 중심 평등관에 비추어 보아도, 너무나 당연한 그 애의 권리일 따름이었다.
고맙게도, 그 애는 1년 내내 누구보다 착실히 공부했다. 수업 중에 대답도 가장 크게 했고, 과제도 빼 먹지 않고 성실히 해 왔다. 성적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그 애는 그해 최고의 학생이었다.
‘혹시 첫 수업 때 선생님이 한 말... 상처 되진 않았니?’
몇 번이나 묻고 싶었지만, 결국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생각들, 그런 마음의 교류가 사람 사이에 있다고 믿는다.
확신에 찬 말들, 뒤돌아보지 않는 생각들만큼이나 위험한 게 또 있을까.
‘이 구역에 장애인은 나밖에 없을 거야.’, ‘나만큼 상처 받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어.’,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또 있겠어?’, ‘내가 가장 윗사람일 텐데.’, ‘나는 저들과 다른 MZ세대인걸.’
이런 류의 발상이 우리를 꼰대로 만들고(나이와 무관하게), 사회 통합을 방해하는 요인이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밝은 눈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의심 없는 자명한 태도. 그것이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는...
호환마마보다 무섭고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