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알람이 울리기 일곱 시간 전.
침대에 눕는다. 피곤한데,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내일은 수업 공개의 날이다. 여러 학부모님과 외부인이 학교에 들러 수업을 참관하고 평가하는 날이다. 10년 넘게 교사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업 공개는 편하지 않다. 긴장감이 스멀스멀 몸을 감싼다. 아무래도 오늘은 불면의 밤이 될 것 같다.
나는 오래전부터 간헐적으로 불면증을 경험해 왔다. 계절이 바뀔 때, 혹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아니면 걱정거리가 있을 때, 그것도 아니면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밤에... 종종 잠들기가 어려웠다.
불면의 밤에, 나의 머리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었다.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저 생각에서 그 생각으로,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생각의 연쇄를 끊기 위해 ‘생각하지 말자!’를 열심히 생각했다. 바보 같게도. 불면의 밤에, 나의 머리는 고장 난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과민했고, 불안이 많았다. 늘 신경 쓸 일이 많았고, 불안할 일이 산적해 있었다. 싫고 좋고를 떠나, 나는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 그렇게 산란한 마음을 살살 달래며 살아 온 것 같다.
마음을 달래는 것이 힘겹게 여겨진 건, 십 수 년 전부터이다. 교사가 되어 학교로 출근하면서부터 나의 불안, 나의 불면이 나를 들볶기 시작했다. ‘내가 업무를 잘못하면 어떡하지? 수업이 잘 안 되면 어떡해? 사람들이 나를 장애인이라고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기타 등등. 마음이 나를 본격적으로 못살게 굴기 시작했다.
특히 일요일 밤. 마음은 깃발처럼 이리저리 펄럭였고 요동쳤으며 나를 괴롭혀 댔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되네! 고작 열 시간 후면 출근해야 돼.’ 내 안의 과민과 불안이 깃대를 흔들며 깃발을 펄럭여댔다.
출근을 하면서부터 마음을 달랠 수 없게 된 나는, 그 무렵부터 일요일 밤마다 수면제를 복약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일주일에 한 알씩 먹었고, 연구 수업이나 수업 공개를 해야 할 때에는 평일 밤에도 먹을 때가 있었다.
‘보통 수면제를 쭉 드시거나, 아예 안 드시거나, 둘 중에 하나인데, 간헐적으로 드시네요. 이런 경우는 드물어요.’
수면제를 처방해 주는 의사들마다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밤 11시. 알람이 울리기 여섯 시간 전.
잠들지 못하고 자세를 바꿔 가며 누워 있던 탓인지, 몸과 맘이 불편하다.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내는 곤히 자고 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끝으로 걸어 거실로 나간다. 요의가 없지만 화장실에 한번 가 본다. 목이 마르지 않지만 물도 한번 마셔 본다. 하지만 몸과 맘은 여전히 편치 않다.
소파에 앉는다. 휴대 전화를 들어 메시지를 읽는다. 그리고 또 뭘 해야 하나... 그렇지. 30분 전에 개장한 미국 주식 시장 상황을 살펴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오네!’ 초조한 마음에 시간을 확인한다.
소파에 눕는다.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ASMR을 듣는다. 10분. 20분. 정신이 또렷해진다. 신경질적으로 ASMR을 끈다.
노래를 듣는다.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아이유의 노래이다. 불면의 밤에 만들었다는 '무릎'이란 노래를 감상한다. 편안한 밤을 보내라는 마음이 담긴 '밤편지'도 듣는다. 그러는 사이에 십여 분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
‘아, 자야 하는데!’ 불청객같이 요의가 찾아든다. 화장실에 간다. ‘입이 좀 말라!’ 다시 물을 마신다.
밤 12시. 알람이 울리기 다섯 시간 전
거실 창에 붙어 선다. 눈을 비비고, 맞은편 건물 쪽을 바라본다. 검은 실루엣 사이로 불 켜진 집 몇 곳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불빛이, 불들이, 넓게 번져 보인다. 경계가 흐릿하게 지워진다.
‘잠을 안 자는 걸까, 나처럼 못 자는 걸까.’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에서 등대를 만났을 때처럼 마음이 밝아 온다.
‘깨어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구나.’
무얼 하고 있는지, 왜 잠을 안 자는 건지, 궁금해진다. 혼자 있는지, 외롭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대답이 없다.
나는 상상 속에서 외출을 한다. 친구 만나러 가듯, 맞은편 집으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라도 사 갈까. 그래,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똑똑똑! 늦은 밤이니까 벨보다는 노크가 낫겠지. '안녕하세요? 맥주 한 캔 하실래요?'
열린 창으로 바람이 훅 들어온다. 안 그래도 오지 않던 잠이 더 멀리로 가 버린다. 큰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십 수 년 전에는, 불면의 밤을 보낼 때면 정말 외출을 했었다. 신림역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에 살던 무렵이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가 무려 50만 원인 곳이었다. 목돈이 없었던 까닭에 보증금을 올릴 수도 없었고 전세는 꿈도 꿀 수 없던 때였다. 월세가 비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오피스텔은 대로 가에 딱 붙어 있었다. 밤마다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울리며 내달렸고, 트럭들이 쌩쌩 달렸다. 숙면을 취하기에는 정말이지 좋지 못한 환경이었다.
나는 그때도 과민했고 때때로 불안했다. 창창한 청춘이 고달팠고, 최저임금을 받으며 비정규직 근로자로 살아가는 것도 힘겨웠다. 그런 탓인지,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 잠을 한번 깨 버리면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는 건 고역이었다. 차라리 밤 산책이라도 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오피스텔 밖으로 나가면, 바로 4차선 도로가 나왔다. 왼쪽으로 가면 작은 가게들이, 오른쪽으로 가면 신림역이 나왔는데, 나는 주로 신림역 쪽으로 걸었다. 낮 시간에 그토록 붐비던 역 근처도 새벽 즈음에는 개미 한 마리 없이 적요했다.
집에서 역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왕복 20분인 셈이었다. 나는 흰지팡이도 없이 천천히, 느긋하게 역까지 다녀왔다. 불면증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자주 그 길을 걸었다. 여름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겨울에는 빙판길을 조심조심, 텅 빈 그 길을 산책했다.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거여?”
적막한 길을 걷고 있으면, 해장국집 할머니가 무심히 말을 걸곤 하셨다.
도로가에 해장국집이 있었다. 변변한 이름도 없는 그저 해장국집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가게였는데, 테이블 서너 개가 전부인 좁은 식당이었다. 선지해장국 3500원, 뼈해장국 4000원, 내장탕 4000원, 공깃밥은 무료! 십 수 년 전의 가격이지만, 상당히 저렴한 비용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부지런한 분들이셨다. 해장국집은... 새벽 두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만 문을 닫았다. 하루 21시간 영업인 식당이었다.
“이 시간에 어딜 가냐니깐!”
할머니는 늦은 밤에 혹은 새벽 시간에 나를 볼 때마다 말을 걸어 주셨다. 가게 앞을 쓸다가도, 식당 안에서 반찬을 만드시다가도, 어딜 가냐고 인사하셨다.
“산책이요. 잠이 안 와서요.”
“짝꿍은 어떻게 하고 혼자 나왔대?”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의 안부까지 깨알같이 묻는 할머니셨다.
“난 졸려 죽겄어. 장사한다고 이러고 있잖여.”
“할아버지는요?”
“저기 앉아서 졸고 있잖여. 아참, 자네 잘 안 보이지? 쯧쯧, 젊은 사람이 그렇게 안 보여서 어쩐댜?”
할머니는 보지 못하는 나와 걷지 못하는 아내를 안쓰러워하셨고 마음으로 예뻐해 주셨다.
“너무 늦었응깨 집에 들어가. 짝꿍이 걱정허겄네.”
나는 어쩌면, 할머니와의 짧은 대화가 그리워서 자주 밤산책을 나간 건지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지에서 누군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느낌, 그것이 당시 나에게는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연민과 애정은 어떤 수면제보다도 좋은 치료제였다.
새벽 1시. 알람이 울리기 네 시간 전.
이제 네 시간 후면 아침 알람이 울린다. 더 지체할 수 없다. 이제 정말 자야 한다. 더 늦게 잠들면 내일, 아니지, 몇 시간 후에 시작될 오늘이 힘들어진다.
‘지금이라도 수면제를 먹을까.’
수면제의 반감기는 8시간 정도이다. 즉 수면제를 먹은 후 8시간 후쯤 지나야 약효가 줄어든다고 봐야 한다. 그 말인즉슨, 지금 약을 먹으면 오전 내내 약효가 남아 있는 몸으로 수업을 하고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에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출근하면 어쩌지?’
그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사실 몇 번인가 그런 적이 있다. 정말 최악의 하루를 보내게 된다.
‘앞집은 불이 꺼졌을까? 해장국집 할머니는 아직도 가게를 지키시겠지? 그리고 아이유는 이 밤, 곡을 쓸까?’
몸은 물 먹은 솜처럼 가라앉는데, 정신은 자꾸만 이리저리로 튀어오른다. 아무래도 수면제를 먹어야 할 것 같다. 한 알을 다 먹기에는 부담스럽고, 반 알을 쪼개어 먹어야 할 듯하다. 10분. 딱 10분만 누워 있기로 한다. 그런 후에도 잠이 오지 않으면, 약을 먹는 수밖에.
사념을 털어내기 위해, 아이유의 노래 '무릎'을 마음에서 재생한다. 노래가 한밤의 산책길처럼 펼쳐진다. 그 길 위에 앞집 사람이, 해장국집 할머니가, 그림처럼 서 있다.
오늘, 나는 잠들 수 있을까.
< ‘무릎’ 가사 >
모두 잠드는 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다 지나버린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서 깨어있어
누굴 기다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자리를 떠올리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Ooh ooh ooh ooh
조용하던 두 눈을
다시 나에게 내리면
나 그때처럼 말갛게 웃어 보일 수 있을까
나 지친 것 같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아
그대 있는 곳에
돌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면 좋겠어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스르르르륵 스르르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스르르르륵 스르르
깊은 잠을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안녕한 밤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