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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제이 Feb 13. 2021

죽어도 다신 못해

파란만장 베이징 이사 1탄


지난봄 남편의 북경행이 결정되고 준비기간이 길다 생각했는데, 웬걸, 전쟁을 치르다시피 하고 한국을 떠나왔다. 돌이켜보니 아찔하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전쟁통 한가운데 있었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시간에 쫓겨 집을 비웠는데, 이제는 아주 오래된 일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북경행이 결정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들 중국어 학원 등록. 남편은 주중 주말 두 강좌를 등록했다. 여름이 지나고 9월부터 남편은 본사로 출근해야 했다. 태풍 마이삭이 오던 날 새벽 남편은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고(주말 지나 월요일 자로 발령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회사는 수요일 퇴근시간에 인사이동을 발표, 남편은 목요일부터 서울로 출근하게 되었다, 본사 출근은 북경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남편은 서울에 난 대전에 주말부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10월 일주일 만에 집이 팔렸고, 11월 새 아파트를 매수했다. 12월 전세계약을 맺으면서 집 문제는 일단락이 되었다. 참으로 간단하기도 하다. 부동산 일을 처리하며 정말 피곤하고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몇 문장으로 끝나버렸다. 12월 모든 수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이사 준비에 돌입했다.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달. 1월 29일에 살던 집을 비워주고 2월 5일엔 비행기를 타야 한다. 남편은 비자와 아이들 중국학교 일들을 처리하기로 하고 나머진 내가 맡았다.


북경에서 살 집을 구해야 한다. 회사에서 마련한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임자의 집을 이어받기도 마땅치가 않았다. 회사에서 매달 지원하는 체류비에 집세가 포함되어 있다. 코로나 시국에 직접 가서 집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부동산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며 선택지를 좁혔다. 중국 아파트는 절대 사진 보고 결정하면 안 된다고, 냄새도 배수 상태도 직접 체크해야 한다고 했지만 부동산 중개인에 의지할 수밖에.


애초에는 격리 끝나고 골라놓은 몇몇 집들을 보고 최종 선택을 할 계획이었지만, 중국 정부의 해외입국자 격리방침이 '2주 호텔격리+1주 관찰격리'에서 '3주 호텔격리+1주 관찰격리'로 바뀌면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집도 구하지 못한 채 아이들이 등교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영상통화로 집을 결정하고 보증금을 송금하기로 했다. 북경의 아파트 임대 보증금은 한 달 치 월세이다.


위안화 송금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중국 무식자인 나로서는 은행 일이 그렇게 힘들게 될지 미처 몰랐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중국 개인 간의 위안화 송금은 불가하다. 법인 간의 위안화 송금만 가능하다. 달러 송금은 가능하지만 받는 입장에서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환율, 수수료, 은행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의 이유 때문이라는데 해외송금은 다 그렇지 않나. 다른 송금방법을 여러 은행에 수소문해봤지만 달러송금이 가장 확실하고도 빠른 방법이었다.


뒤늦게 달러로 송금해도 좋다는 중개인의 연락을 받고 이럴 거면 처음부터 달러로 송금하라고 하지 그러면 반나절을 은행에서 버리진 않았을 텐데 은행서류를 작성했다. 보고 또 보고 수차례 확인을 했건만, 3일이 지나도록 입금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부동산의 연락을 받고서야 계좌번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명백한, 나의 실수였다. 다행히 미확인 계좌라는 이유로 송금한 돈이 되돌아왔고 수수료만 조금 더 들여 다시 송금할 수 있었다. 휴... 더럽게 힘들다.


10년을 살았던 아파트의 묵은 짐들을 정리하고 북경으로 이삿짐 44박스를 보냈다. 당장 필요 없는 책 15박스는 시댁 창고로 갔다. 격리생활 동안 필요한 짐과 이삿짐이 우리보다 늦게 도착할 것을 대비해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꾸렸다. 거기에 남편의 서울살이 짐이 더해지니 한.도.초.과.


남편은 추가 수하물을 부치느니 국제택배로 미리 보내자 제안했고, 박스 3개를 채웠다. 대부분이 옷이었는데 잠들기 전 불안한 마음으로 '중국 택배 제한 품목'을 검색하고는 좌절하고 말았다. 입던 옷은 택배로 부치는 게 불가능했다. 새 옷만 가능하다나. 새 옷이라 우겨볼까 잠깐 고민했지만 영수증을 요구한다는 후기에 빠른 포기. 중국은 뭐 하나 보내기가 이리 어렵나 부아가 치밀었다. 미리 찾아보지 않은 내 탓이거늘 화를 내어 무엇하리. 눈 뜨자마자 운송대행업체, 이삿짐 업체에 연락했는데 딱히 대안이 없었다. 모두 짊어지고 가기로 결정!


짐을 싸다 말고 아이들이 배정받은 중학교로 달려갔다. 해외이사를 하게 되어 아이들이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닐 수 없음을 서류로 증명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받아야 했다. 그렇게 서류를 내고 교감선생님께 인사까지 하고 왔건만, 다음날 예비소집에서 우리 아이들이 왜 참석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단다.


이제는 북경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준비할 차례다. 지정병원에서 pcr검사와 혈청검사를 하고 다음날 음성 확인서를 받았다. 코로나 검사가 제일 쉬웠다. 아, 이젠 정말 비행기만 타면 된다는 말인가. 빨리 끝내고 싶다. 북경에 가야만 쉴 수 있을 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게 몇 날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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