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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엽 Mar 03. 2020

First-mover의 안과 밖

선점자의 우위(First-mover advantage)와 이를 추구하는 전략은 경쟁자를 압도하고 시장을 장악하는 효과적인 방법론 중 하나로 종종 언급된다. 나 역시 경영학을 공부했던 학부 시절부터 시작해 네이버, 쿠팡 등의 기업과 벤처캐피털에서 일했던 기간에 걸쳐 자주 이런 주장을 접해왔다. 특히 투자 유치를 위해 VC를 만나는 초기기업 창업자 중 상당수가 '내(우리)가 대한민국(글로벌)에서 이 서비스(비즈니스)를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주장을 본인이 창업한 회사의 차별적인 경쟁력으로 언급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어떤 서비스(비즈니스)를 처음으로 시작한 회사’ 정도의 단순한 의미로 정의된 First-mover advantage에 대체로 회의적이며, 설령 일시적으로 이것이 작동하더라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특히 진화와 성장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고 경쟁이 치열한 Consumer Tech 분야에 있어서는 First-mover가 누리는 제한된 우위 조차도 아주 일시적으로만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험적으로 이를 방증하는 것 역시 크게 어렵지 않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구글은 최초의 검색엔진이 아니었지만 검색 분야를 혁신하며 지배적 위치에 올라섰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Tech 분야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네이버 역시 국내 최초의 인터넷 포털이 아니었지만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국내 최대의 인터넷 회사로 거듭났으며 페이스북 또한 앞서 출시된 경쟁 서비스들을 제압하고 소셜 미디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이들의 맞은편에는 First-mover advantage를 반박하는 수많은 낙오한 서비스와 회사들이 있다.


그렇다면 First-mover advantage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는 걸까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First-mover advantage를 보다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이와 관련해 Linkedin의 창업자이며 Greylock Partners를 이끌고 있는 Reid Hoffman이 내놓은 의견은 매우 흥미롭다.


What most people don't appreciate about why so many great companies come out of Silicon Valley is the knowledge of how to do scale-up. It's not just that you build an app and everything works out.


What first mover means is first mover to scale. If you don't play the move-fast game, you can frequently lose out to someone who is.


- Silicon Valley Success Goes to the Fastest, Not the First, Wired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표현은 'Scale' 그리고 'Scale-up'이다. 나는 'Scale'을  의미있는(=엄청난) 규모 그 자체로, 'Scale-up'은 의미 있는 Scale(=Critical mass)에 도달하는 속도의 맥락으로 이해한다. (이 두 단어는 Unicon의 조건을 정의하는 데에도 매우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주제이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즉, First-mover advantage는 'First-mover'를 'First-mover to scale'로 구체화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다. Scale 거의 모든 영역에서 리더십을 갖게 하는 근본적인 경쟁력의 원천인 동시에 누군가 특정 영역에서 리더십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First-mover의 의미를 이처럼 구체화하면 앞서 언급한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 역시 Second-mover가 아니라 First-mover로 정의할 수 있다.


다양한 요소가 복잡한 관계와 프로세스로 거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탁월한 기술과 운영 역량을 모두 필요로 하는 이커머스 영역에도 이 문장은 큰 시사점을 준다.


누군가 하루에 10건 혹은 100건의 고객 주문을 처리하는 수준에서 서울의 강남 지역을 대상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했다고 가정하자. 자영업이라면 이 또한 꽤 도전적인 과제일 수 있으나 비즈니스라는 관점에 본다면 대단히 높은 난이도의 그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 정도 규모에서는 차별화된 기술이나 운영 역량이 필요하지 않다. 소규모의 창고에 물건을 보관하고 숙련되지 않은 사람들이 상품을 포장하고 배달을 대행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해 배송하는 것으로도 고객의 요구를 그럭저럭 맞출 수 있다. 그러나 고객 주문량이 1천 건으로 늘어나고 배송 지역을 서울 전역으로 확대하면 그 난이도가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다. 더 나아가  주문 규모가 1만 건, 1십만 건 아니 1백만 건 또는 1천만 건으로 늘어나고 고객이 서울이나 수도권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에 산재해 있다면, 그 복잡도와 난이도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진다. 이 순간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고객이 수긍하는 가격에, 고객이 원하는 시기에,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배송할 수 있는지 여부가 진정한 경쟁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small scale에서는 누구나 사업을 시작하고 고객의 요구를 맞출  있지만  scale 100, 1,000 혹은 10,000배로 커지면 그것은 아무나 참여하거나 수행할  없는 수준의 전혀 다른 게임이 되며,  순간의 승자가 진정한 first-mover라는 의미이다. 


'Our sole purpose is to Wow our Customers. We must do everything we can to honor the trust they place in us.(쿠팡의 존재 이유는 고객입니다. 쿠팡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고객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19 국면 초기에 전사적으로 공유된 메시지의 일부분이다. 최근의 회사 분위기는 전시상황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절박하고 투쟁적이다. 직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갑작스럽게 엄청난 규모로 커진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인 미션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 모두가 고객인 우리에게 국민의 고통은 곧 고객의 고통이다. 쿠팡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고 고객이 우리에게 부여한 문제를 해결하고, 그래서 고객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제시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구성원 모두가 굳게 믿으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곧 상황이 수습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또한 이 상황이 지나가고 나면, 고객이 부여한 이 거대한 과제와 도전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과연 누가 진정한 First-mover였는지도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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