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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엽 Jun 16. 2020

'인터넷과 지식 기술'의 추억

알토스벤처스 박희은 님 초대로 서울대학교 '인터넷과 지식 기술' 수업의 기말 프레젠테이션 평가자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잊고 지내던 당시 기억을 페이스북이 '과거의 오늘'로 귀띔해줬다. 당시 발표를 들으면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간단히 적어 심사 총평 시간에 공유했고 그 내용을 정리해 페이스북에 적었는데 나의 기록을 위해 그리고 혹시 도움이 되는 다른 분들이 계실까 해서 이곳으로 옮겨 적는다. 


사회생활 경험이 전혀 없는 학부생들 대상의 피드백이어서 최대한 쉽고 단순하게 설명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대부분 진실은 쉽고 단순한 문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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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업의 목적은 언제나 고객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업의 시작은 언제나 해결할만한 좋은 문제, 즉 고객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해결방법(설루션)에 대한 고민은 그다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팀은 고객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설루션을 먼저 정해놓고 그다음에 답정너처럼 설루션에 맞는 문제를 찾기도 했습니다. 사업을 포함한 일반적인 문제 해결의 순서라는 관점에서는 자연스럽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몸에 옷을 맞춰야지, 옷에 몸을 맞출 수는 없습니다.


2. 스타트업과 스타트업 투자에는 대부분의 경우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없고, 따라서 맞고 틀리고의 접근을 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창업자의 주관적인 의견과 가치, 믿음에 투자자가 공감하고 참여하는 과정에 좀 더 가깝습니다. 왜 이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는지, 왜 이것이 최적의 설루션인지를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개연성 있게 설명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3.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의 얘기를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시중에 공개되어 있는 리서치 자료나 기사, 즉 다른 사람들이 조사했거나 주장하는 내용을 인용하고 나열하기보다 여러분의 발견과 경험, 가정을 검증해 나간 과정 등을 더 많이 들려주시면 제가 여러분들을 이해하고 의견을 드리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4. 여러분의 사업을 잘하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여러분은 왜 그것을 남들과 다르게 그리고 잘할 수 있는지를 꼭 설명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경쟁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당신보다 돈과 시간, 사람, 경험이 많다고 가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5. 사업을 하는 것과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사업을 해도 애플리케이션이 없을 수 있고, 애플리케이션이 있어도 사업이 아닐 수 있습니다. 종종, 특히 학생 창업팀 중에 이 두 가지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6. 많은 팀들이 설문조사를 했는데 학부생들이 설문조사 문항을 잘 만들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객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효과적인 조사 방법론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객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욕구를 좀 더 그럴듯한 그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무의식 중에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직접 묻는 것보다,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습니다. 저는 100명의 고객을 설문조사하는 것보다 1~5명 잠재 고객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고객의 문제와 그 문제를 현재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7. 투자자나 기자 등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길어야 하루, 대부분의 경우 10분보다 적은 시간 동안 당신의 사업을 살피고 의견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창업자는 1년 365일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창업자가 살피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투자자나 기자가 아니라 고객입니다. 창업자인 당신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그래서 당신의 고객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면, 다른 누군가의 의견은 참고사항일 뿐 절대적인 무엇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누군가의 의견에 흔들린다면 경우에 따라 여러분이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쓰지 않았거나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습니다.  


8.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뭔가 열심히 하는 이유는 그것을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다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잘할 수 없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배움의 관점에서도 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내 경험에 의지해서 판단해 본다면, 실패의 경험보다 성공의 그것으로부터 훨씬 더 많이 배웠습니다. 열심히 했다는 것으로 실패한 스스로를 위로하지 말고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9. 여러분의 주장은 주관적이지만 그 주관적 주장과 가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직관이 아니라 숫자나 사실관계 중심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많이 쓰는 단어들을 몇 개 적어 봤는데, ‘매우 높은’, ‘굉장히 잘하는’, ‘나름의 기준에 따라’ 등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잘 모르고, 여러분들은 내게 아무것도 증명한 것이 없습니다. 학부생들이 대단한 판단력과 실행력을 갖추지 않았다고 짐작하는 것도 일반적인 경험에 비췄을 때 아주 불합리한 평가는 아닐 것입니다. 즉, 여러분의 직관은 나를 설득하는데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에 대해 여러분이 발견하고 정리한 숫자와 사실관계(fact)는 여러분이 누군가를 설득하는데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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