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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싶다면

- 제임스 설터 지음/서창렬 옮김

제가 예전에 말이죠. 얼룽퉁탕 한 방에 소설 한 편 쓴 적이 있어요.




어느 날

무의식의 하늘에서 단어와 문장이 손끝으로 쏟아져 내리더군요.

의미의 형태를 이룬 어휘들이 내 머리의 한쪽 구석에서 똑똑 노크를 하며 

순식간에 찾아왔어요.

난 그저 날 선 작두를 탄 박수무당처럼 흥얼흥얼 거리며 춤을 추면서 쭉쭉 휘갈겨 썼죠.

내가 만든 소설이 아니라 천상의 계시와 도깨비의 장난으로 탄생한 작품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 위대한 작품은 담당교수의 악평 속에 비틀비틀거리더니

결국 시궁창 속에 처박혔어요.

'뜨거움'만 넘쳐날 뿐 이야기의 구성에 맞는 적절한 개연성, 차분한 배경과 인물 묘사, 클라이맥스로 끌고 가는 치밀한 구성 단계의 설정 등은 부족한 작품이었죠.


그 후

미완성의 소설 습작 몇 편, 준비되지 못한 신춘문예 응모.

죄다 실패와 탈락의 독배를 마시다 보니 소설은 쓰기보다 읽기에 가까운 취미 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소설 창작은 특출한 작가만이 가능한 예술분야라고 생각했죠.



작가들의 작가였던 제임스 설터(1925~2015)


그러다가 언어 도착자 '제임스 설터'를 만났습니다.

'아메리카 급행열차' 단편집을 읽을 때면 해도 그가 그렇게 유명한 소설가인지 몰랐죠.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마바가 휴가지에 가져갔다는 소설을 쓴 작가.

한국 전쟁 중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경험이 있는 생떽쥐베리와 유사한 이력의 소유자. 제임스 설터

‘제임스 설터’의 산문인 ‘소설을 쓰고 싶다면’ 은 단지 소설 창작법에 대한 무미건조한 이론서가 아니라 작가가 사랑한  위대한 작품과 개인적인 글쓰기가 성행화된 작금에 알사탕 같은 작문 비법들을 차근차근 건네고 있어요.


'헤밍웨이', '나보코프', '발자크', '루이페르디낭 셀린', '귀스타브 플로베르' 등 유명 작가와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사카 바벨'을 소개하며 소설 작법의 예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주의 깊은 관찰, 고유한 문체, 끝없는 습작과 반복적인 퇴고의 형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또한 소설은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라고 주장하죠. 즉 작가의 실제 경험이 창작의 주요 씨앗이라는 것이죠. 


‘작가의 작가’라고 불리는 설터는 ’ 글을 쓰고자 하는 궁극적인 충동은 모든 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삶은 소멸될 오아시스이며 기억은 믿음의 속임수에 불과하죠. 

그렇다면 오직 기록만이 삶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 우리의 일상이 언어로 기록될 때 기억은 저편의 망각이 아닌 살아 있는 오늘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 몸 안에 새겨진 기억의 조각들을 소환하여 몇 편의 이야기로 엮고 싶은 강한 충동이 꿈틀거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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