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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올빼미

- 사데크 헤다야트/공경희 옮김

삶에는 서서히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지하철 7호선 건대 입구역. 

저녁 늦은 시간. 지하철 승차장은 한가로웠고

나는 무심결에 한 발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다.

아침에 닦은 구두코가 반짝 빛나고 있었고 노란 안전선은 소멸을 향한 출발선으로 보였다.

더 이상 왼손에 든 영업용 가방은 무겁지 않았다.


오랜 방랑과 존재의 침체, 벌거벗은 가난에 자존은 소멸되었고 

막막한 사막 같은 현실은 더 이상 희망의 오아시스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오랜 전부터 이 실행을 음모적으로 계획하며 

돌발적인 실행의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 내 몸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점점 현실은 멀어지고 그 너머의 세계는 내 몸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지남철에 빨려가듯 불가항력이 나를 지배했다. 

그때 유리조각 같은 안내방송이 연이어 들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끝날 수도 있었다. 


누구나 ‘자살’에 대한 갈망이 있다.

삶이 비루하고 존재가 해체될 때 금기에 대한 유혹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노출 제본으로 만든 소설책. 소장품으로도 아깝지 않은 아름다운 책이다


이란 현대 문학의 거장 ‘사데크 헤다야트’는 ‘눈먼 올빼미’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후

1951년 4월 프랑스 임대 아파트에서 가스 밸브를 열고 자살했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그는 프랑스 유학을 통해 유럽의 문학과 예술을 배웠지만 동시에 은폐된 고독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배척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사회와의 부조화는 더욱 그를 외골수로 만들었고 다시 문학에 진력하지만 발표된 작품은 정부로부터 검열과 통제를 받았고 대중으로부터는 멀어졌다.


"문제의 핵심은 내가 이 모든 것에 지쳤다는 거야. 나는 삶에 지쳤어. 나는 더 이상 나를 속일 수 없어."


오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무너져 내린 자신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사데크 헤다야트'에게 삶이란 무의미한 절규의 난장판에 불과했고 그 악랄한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을 통한 현실 너머의 세계로 가는 길 뿐이었다.


그렇다. 작가는 세속적인 삶의 역겨움과 인간에 대한 좌절감. 그리고 자신의 별을 갖지 못한 작가의 내면을 ‘광기와 절망의 풍경’으로 그려 내었다.
이란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인 사데크 헤다야트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올빼미 삽화


이 소설은 주인공이 ‘존재의 무덤’인 은둔의 방에서 바라본 몽환적인 바깥 풍경을 초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두 개의 이야기가 병치된 옴니버스 방식은 비 내리는 흑백 필름처럼 음울하며 서사의 구조는 반복 변주되어 죽음의 그림자를 연속적으로 재생한다.


올빼미, 밀폐된 공간과 사막, 사이프러스 나무, 신비한 여인과 괴상한 노인, 살인과 공동묘지로 달리는 마차, 아편과 독이 든 포도주 등 끊임없이 죽음의 주술을 부르는 어두운 낱말과 어울려 소설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실제 이란에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연이어 ‘자살’을 하자 가장 위험한 책으로 분류하여 금서로 지정하였다.

소설 속 주인공은 몽환 속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가 모든 헛된 상상들을 물리친다. 우리는 죽음의 자식들이며.........우리는 죽음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세간의 평은 ‘어둡지만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한다. 


그의 소설이 카프카와 릴케, 샤르트르의 영향을 받아 존재의 자의식과 절망에 대해 과도하게 천착한 측면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금기를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과감하게 형상화한 것은 죽음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깬 의미 있는 시도이다. 

또한 전통적인 소설 양식에서 벗어난 형식미로 인해 다소 까다로운 소설이지만 현대 이란 문학을 이해하는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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