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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의 링컨

- 조지 손더스/정영목 옮김


내 오랜 기억하나.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잠이 든 후

다시 일어난 새벽. 

이부자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도 꿈속에 있는 것인지. 

현실 분간이 전혀 되지 않는 어린 마음에 무서움이 몰려왔다. 

급히 할미와 사촌 누이를 불러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점점 내 목소리는 공포의 옷을 입고 집안을 떠돌기 시작했다. 


모두들 어린 나를 두고 어디로 간 것일까?

주섬주섬 옷을 입고 마당으로 내려 서자 외진 화단에 

동백꽃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대문 앞 골목길은 고양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산 아래 마을은 흑백 필름처럼 불확실한 풍경이었다.


이후 내가 어떻게 다시 잠이 들었는지.

그때 모두들 어디로 갔었는지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다.

단지 내가 할미를 찾아 헤맸던 그 세계가 진짜 세계였는지 

또는 나의 기억은 진짜 나의 기억인지 유령의 기억인지 궁금할 뿐이다.


아직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떠도는 곳 '바르도'가 술렁인다.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조지 손더슨


조지 손더슨의 ‘바르도의 링컨’은 유령들의 이야기이다. 

‘바르도’는 티베트 불교 용어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중간 지대, 

죽었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영혼들이 있는 공간이다. 

이승에 대한 집착, 원한과 분노를 가진 자들이 유령으로 떠돌며 신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장소이다.

이승에서 겪은 그들의 상처와 억울함, 부끄러운 고백들이 희곡의 형식으로 퍼져 나온다.


링컨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열한 살 윌리 링컨의 영혼도 이곳에 머무른다.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식의 죽음.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날 수 없는 아들 윌리.

링컨 대통령과 그의 아들 윌리

대통령과 윌리의 죽음은

각종 기록물과 서적. 인터뷰 증언 등을 인용하여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 양식을 전량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형식미를 창출한 놀라운 작품이다.


연극의 대본처럼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 다양한 인용구를 활용한 사건의 전개, 특정한 서술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은 이전 소설과는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 ‘바르도’에서 벌어지는 유령들의 세계를 극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표현한 대작가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2017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롤라 영은 '완전히 독창적인 이 소설의 플롯의 스타일은 위트있고 지적이며  지극히 감동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라고 전했다.

비록 낯선 읽기를 강요받더라도 그 읽는 맛은 새로운 즐거움으로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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