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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먹고 마시고 자고  #2

- 야요이켄, 돈코츠 라멘을 먹고 카시마 혼칸에서 잠이 들다

역시 여행지에서 게으름뱅이는 없다.



이른 새벽 5시 눈을 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어리둥절한 시간이다.

심심풀이 삼아 여행 관련 앱을 실행하자 숙소 근처 가볼만한 장소와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이 나타났다.


#야요이켄

일본 Fukuoka, Hakata-ku, Gionmachi, 1丁目24−1 ダイワロイネットホテル博多祇園, 1F


일본 가정식 백반으로 유명한 'YAYOICAN'

료칸 '카시마 혼칸'에서 불과 100미터 근방이었다.

레이센 마치의 거리는 한산했고 이따금 자전거를 탄 직장인들이 보였다.

야요이켄 유리창에 진열된 모형 음식을 보자 이른 새벽부터 침이 고였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판기에서 'Neva Toro and Chicken Tempura' 선택하고 자리에 앉았다.

벌써 2~3개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여종원이 이내 테이블에 밥상을 차렸다.


흰쌀밥, 날계란, 된장국, 붉은 참치살과 낫토(일본 전통 콩 발효식품), 고추, 미역 등이 담긴 사발과 가라아게(닭고기 튀김)를 내놓았다.


어떻게 먹어야 될지 난감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종업원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야요이켄의 대표적인 메뉴인 네바 토로 치킨 튀김 정식


하지만 대충 음식물 분석을 하니 이것저것 밥그릇에 넣어서 비벼먹는 듯했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참치회를 간장 소스에 찍어 먹었다.

참치살을 파고드는 이빨 사이로 맛있는 즙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혓바닥 위에서 스멀스멀 미끄러지더니 목구멍으로 홀라당 내려가 버렸다.

이윽고 날계란과 낫토, 미역 등을 밥사발에 비벼 한 모금 떠먹었다.

특별한 맛이라기보다 예전 우리 어머니가 날계란과 참기름 그리고 각종 나물을 넣어 비벼주시던 방식과 유사했다. 이것만 먹었다면 평범한 일본 가정식 백반에 불과했을 것이다.

야요이켄에는 '가라아게'라는 닭튀김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하고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튀김 같은데 튀김 같지 않은 이상야릇한 모습. 호기심에 한 입 베어 먹어 보았다.  


거칠고 딱딱한 튀김이 아니라 매끈매끈한 튀김 껍질과 함께 잘 익는 닭살이 어금니에 씹혔다.
입에 당기는 듯 맛깔스러운 맛이 입 안에 가득했다. 감칠맛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이른 새벽부터 먹는 닭고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가라아게' 정도는 괜찮았다.


# 나가하마 넘버원 기온점

일본 Fukuoka, Hakata-ku, Gionmachi, 4−64 ニューウイングビル祇園 1F


조금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반드시 먹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라멘집을 찾았다.

아직도 생맥주 2잔과 스시 10조각이 위장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가하마 넘버원' 라멘집까지 걸어가면서 빨리 소화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전히 배는 부른 상태.

근처 전쟁터 같은 파친코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조금 배가 가벼워진 느낌이다.

유명한 돈코츠 라멘의 맛집답게 저녁 손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안쪽 구석에 앉아 '스페셜 돈코츠' 라멘을 시켰다.

그리고 식당 내부를 두리번두리번 거리자 유명인들의 방문 기념 사인판들이 벽면에 부착돼 있고 정면에는 라멘 육수를 끓이는 원통형 가마솥이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다.

낡고 허름한 라멘 집 하지만 맛은 일품 그 자체이다


라멘을 별도의 밀폐된 공간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 앞에서 요리하기 때문에 조금 어수선하고 불결해 보이지만 생생한 맛의 현장에서 진짜 라멘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후쿠오카가 자랑하는 돈코츠 라멘이 나왔다.


특별판답게 큰 그릇에 반숙 계란인 '아지타마' 두 개와 편육 같은 차슈가 적당한 크기로 사발의 둘레를 따라 얹혀 있고 대파와 미역이 고명으로 올라와 있다.


먼저 국물을 마셔 보았다.

아주 진한 맛이다.

돼지고기 뼈를 우린 국물이기 때문에 약간 비리한 남새가 났지만  도리어 식욕을 더 자극했다.

호소멘(얇은 면)을 건져 올려 후루루 입 안에서 씹은 후 연이어 반숙 계란을 입에 물었다.

차슈에 면을 감아 또 먹었다.

계속 배가 불러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얇은 면이 목울대에 갈리면 국물을 마셔 아랫배로 내려 보내고 비릿하고 느끼한 맛이 나면 생강절임을 먹었다. 이마빡에 땀을 비실비실 흘리며 겨우 한 그릇을 먹었다.

인간은 왜 하루 세 끼만 먹어야 하는가.  돈코츠 라멘을 먹으며 참으로 인간의 소화능력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


# 료칸 카시마 혼칸

일본 Fukuoka, Hakata-ku, Gionmachi, 1丁目24−1 ダイワロイネットホテル博多祇園, 1F


숙소를 잡을 때 몇 번이나 망설였다.

현대식 호텔 건물이 주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버리고 얇은 벽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음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욕실. 냉장고도 없는 료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곳 카시마 혼칸은 80년 된 낡은 목조 건물이었다.

입구에서 철쭉꽃이 만발한 채 화사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2층 높이의 나무들은 목조건물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높고 커다란 신발장이 좌우로 포진해 있고 약간 우측방향으로 안방 같은 거실이 편안하게 놓여 있었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료칸 카시마 혼칸, 때론 불편함이 최상의 추억을 남겨준다


붉은 카펫을 깐 어두운 복도가 길게 뻗어 있고 천장에는 유리등이 유독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요철 형태의 여관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요철 바깥은 숙박시설과 공중목욕탕과 화장실을 갖추었고 요철 안쪽은 오래된 일본식 정원을 꾸며 두었다.

고층 빌딩 속에서 자리 잡은 일본식 여관은 오랜 역사에서 주는 전통미와 고즈넉한 자연미를 동시에 주고 있었다.

나의 숙소인 2층으로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삐그덕 삐그덕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다지 위험스러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넓은 다다미방과 널빤지로 짠 천장, 그리고 형광등. 국민학교 시절 보았던 나무 마루가 베란다에 깔려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70년대식 다이얼 전화기가 옛 영화의 소품처럼 테이블에 앉아 있고 벚꽃 무늬가 있는 홑이불은 조금 낡아 보였지만 깨끗한 상태였다.


처음 우려와 달리 옆방은 투숙객이 없는지 소음은 들리지 않았고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화장실과 목욕탕에서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도리어 넓은 대중목욕탕을 혼자서 사용하니 하루 피곤이 모두 풀리는 듯했다.

아마 1인 손님을 위해 여관 측에서 다른 투숙객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한 듯했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빈둥빈둥 소설책만 읽어도 좋을 아주 포근한 안식처였지만 안타깝게도 하룻밤만 지내고 다음날 아침 안방 같은 거실에서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와야 했다.

다시 후쿠오카에 온다면 전일정을 여기서 숙박을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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