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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먹고 마시고 자고  #1

- 카레, 덴푸라, 스시 맛의 향연(사진: TEMPURA  TAKAO)


이렇게 빨리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할 수 있는 도시가 있을까




인천공항에서 활주로를 벗어난 지 1시간.

그리고 후쿠오카 공항에서 5번 출구로 나와 2번 정류장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하카타 버스 정류장까지 15분 정도 걸렸다.

한국에서 너무 가까운 후쿠오카.

하카타 역 광장으로 들어서자 햇빛이 창검을 들고 여행자를 맞이하였다.

햇살이 제법 따가웠지만 시원한 바다 바람이 불고 있어 견딜만했다.

역 유리벽면에는 거대한 원형의 시계가 오전 11시 4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옆에는 한큐와 키테 백화점이 보였다.

규슈 북부의 최대 도시답게 무수한 인파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정해진 일정도 없이 이곳으로 떠나왔다.


이곳 후쿠오카에서도 우연성에 기댄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저 '특정 지점' 정도 정해 놓은 처지였다.

'츠타야' 서점과 '북스 큐브릭' 그리고 '캐날시티', 나카스 강 근처의 '야타이' 정도에 불과했다.

누구나 간다는 유후인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후쿠오카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특별 열차 '노모리'를 타고 싶었지만 그곳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는 무리였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항상 우연성은 여행의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후쿠오카는 맛집과 쇼핑의 도시이다.

그동안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 후쿠오카 여행만큼은 맛집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쇼핑은 여전히 관심사항이 아니다.

오직 오장육부의 감각으로 이 도시를 기억하고 싶었다. 여행에서 눈만 즐거우면 반쪽 가리 여행이다.
혀와 위장이 즐거워야 한다. 그런데 이 미각의 도시에서 무엇부터 먹어야 할까?


# 캠프 키테

博多もつ鍋おおやま カウンター B1F  


우선 하카타 역 주변 유명 맛집을 검색해 보았다.

역시 맛집의 도시답게 여러 집들이 미각을 자극했지만 그중에서 카레를 먹기로 결정하고 구글맵이 이끄는 대로 전진과 후퇴, 좌회전과 우회전을 거듭하며 '캠프 키테'를 찾아 나섰다.

캠프 키테, 다양한 카레의 성찬. 그리고 방문 손님에게 주는 기념 우표


키테 백화점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그곳은 그야말로 캠프 분위기였다.

그물망에 배낭이 걸려있고 반합, 코펠, 휴대용 물통 등 각종 아웃도어 용품들이 실내를 장식하고 있었다.

바깥 출입구 쪽에 자리를 잡고 11가지 채소를 넣은 990엔짜리 카레를 주문했다.

역시 한국에서 먹던 오뚜기 3분 카레 수준은 아니었다.


단호박, 토마토, 가지, 연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야채들이 카레에 덤벅이 되어 나왔고 하얀 접시 위에 하얀 쌀밥이 소담하게 얹어 나왔다.


끈적끈적한 카레를 밥에 비벼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반찬 겸 씹어 먹는 야채의 맛도 더욱 풍미를 자극했다.

특히 흰쌀밥 위에 올려진 삽자루 하나는 이 가게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는 화룡점점의 소품이었다.



#하카타 덴푸라 다카오 캐널시티점

福岡県福岡市博多区住吉1丁目2−1 4F シネマストリート


낯선 길을 걸어가면 항상 목적지는 멀어 보인다. 어디인지를 모르는 채 도로와 신호등, 상점 등을 더듬어 가며 종착지를 찾아가는 여정은 막막하지만 여행자들에게 묘한 설렘을 준다.


기온 역에 위치한 '료칸 카시마 혼칸'에 숙소를 정하고 캐널시티를 찾아갔다.

가까운 거리라 생각했지만 낯선 길은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애초에 덴푸라를 먹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캐널시티에 도착하자 배고픔이 몰려왔다. 그리고 한잔의 시원한 맥주가 간절했다.

정오 무렵 먹었던 열한 가지의 야채들과 카레밥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허기진 위장만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덴푸라 다카오'는 캐널시티 4층에 있었다. 아직 많은 손님이 없었다.

고독한 미식가처럼 호기롭게 문을 열고 들어가 주문 자판기에서 덴푸라 정식과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우선 아사히 생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입술에 부드러운 거품이 묻으면서 입안 가득히 청량감이 가득했다.

금방 빈 뱃속은 알싸한 술기운이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점 먹는 덴푸라.

덴푸라 다카오의 내외부와 정식 메뉴


돼지고기와 새우,  오징어, 연근, 우엉, 가지 등 총 7-8개의 튀김이 나왔다.  

이미 튀긴 음식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주문과 동시에 다찌 중앙에 마련된 조리대에서 덴푸라를 요리했다.

그리고 한 점씩 가져오더니 튀김 기름이 서서히 빠져 나갈수 있도록 만든 스테인리스 철망 위에 올려놓았다.

간장 소스에 찍어서 한 점 살포시 씹자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혀 끝에 적당히 익은 돼지고기와 야채들의 식감이 느껴졌다.

겉감과 속감이 분리되어 맛이 따로 놀지 않고 튀긴 맛과 익은 맛이 골고루 입안에서 맴돌아 일반 분식점에서 맛보기 힘든 고급진 덴푸라의 맛이었다.

거기에 후쿠오카의 명물인 명란젓 다시마와 절인 배추를 반찬삼아 먹으니 약간 느끼한 튀김 맛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었다. 입가심으로 된장국으로 들이 마시니 입안이 상쾌해졌다.

역시 일본은 덴푸라의 나라이다.


#스시 잔마이

福岡県福岡市中央区天神2丁目3−10


스시는 일본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매혹적인 음식이다.

그 와중에 스시 잔마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였다.

한큐와 키테 백화점에서 두리번거리며 스시 집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채 기온 역 주변의 라멘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터벅터벅 기온 역 방향으로 어림잡아 길을 걷고 있는데  밝은 조명등 아래에서 중후한 남성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로 격한 환영의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일본의 참치 왕인 '기무라 기요시'의 밀랍 인형이었다.

출입문 앞에 부착된 대형 메뉴판에서 1,580엔 세트 메뉴를 선택하고 곧장 실내로 들어가 다찌 테이블에 앉았다. 기역자 모양의 요리대에서 3-4명의 요리사들이 바쁜 손놀림으로 스시를 연신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일본의 참치 왕이 맞이하는 '스시 잔마이' 하카타 점


그들은 연신 합창을 하며 주문을 받고 손님이 나갈 때에도 합창으로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한국의 스시집과는 다르게 바로 손님 눈 앞의 유리관에 원재료들이 진열해 놓고 요리사들이 주문에 맞춰 새우와 참치, 고등어 등을 집어서 곧바로 신선한 스시로 만들고 있었다.

곧이어 청어, 장어, 연어, 청어, 새우 초밥과 김밥류가 올라왔고 마지막 입가심으로 좋은 메네기 스시가 올라왔다. 한 점 한 점을 정성스럽게 먹었다.

이 하늘 아래 마지막 식사인 것처럼 미감을 최대한 동원하여 맛을 느끼고 싶었다. 어느새 혀끝에 닿았던 스시 한 점이 입안에 머무를 사이도 없이 목울대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금방 사라져 버리는 맛의 끝을 애써 붙들려고 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먹는다는 것이 이다지도 행복한 일이다'라는 사실을 이곳 후쿠오카에서 다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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