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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우연한 고양이+고양이 관찰기

- 이광호/미로코마치코

지금, 깜빡이지 않는 너의 심원한 푸른 눈은 그 눈을 보고 있는 시선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나는 그 겨울날 점심 식사 후 산보도 할 겸 신부동 애묘 센터까지 걸어가

쇼윈도에 있는 꼬물거리는 고양이들을 보곤 했다.

제법 날은 쌀쌀했지만 나는 그 녀석들의 앙증스러운 귀여움에 빠져 추운 줄도 모르고 구경을 했다. 


그전까지 동물이라고는 어릴 적 마당에서 키우던 매리, 케리라고 불렀던 똥개들과 

어느 날 식탁 위에 올라온 내가 키우던 토끼 정도였다.

그리고 고양이도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쥐잡이용으로 몇 마리를 어머니께서 기르신 것 같은데 

내 기억에 새끼 쥐를 앞발 뒷발로 드리블하며 구석으로 몰아가던 고양이의 모습이 언뜻 떠오른다.

반 평생을 살아도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살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무슨 고양이 귀신이 씌었는지 허구한 날 그 녀석들을 만 다녔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분양 센터 문을 열고 들어 갔을 때 

개와 고양이가 싸질런 특유의 배설물 냄새가 짬뽕이 되어 

내 코를 자극했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때 주인장은  하얀 백설탕 같은 녀석을 내게 안겨 주었는데 그 말랑말랑한 느낌이 

옛날 애인의 몸을 만지는 것 같았다.


그 후 3개월 정도의 랜선 집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 녀석은 대전에서 입양을 하고 

또 한 녀석은 아파트 근처 풀 숲에서 영광스럽게 간택을 받으며 내가 키우게 되었다.


치즈색은 고씨, 턱시도는 초원이


지금 고씨와 초원이가 그 녀석들이다.

처음 초보 집사 시절은 이 녀석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 서로 꽤나 고생을 했다.

이동창에서 똥을 싼 녀석의 엉덩이를 씻기 위해 목욕을 해야 하는데 너무 두렵고 겁이 나서 

예전의 집사에게 카톡으로 문의하고 

유튜브로 고양이 목욕하기를 한참 익힌 후에야 가능했다. 

그밖에 털 빗기, 이빨 닦기, 약 먹이기 등 내게는 참 힘든 고역이었고 

우다다 뛰어다니는 새벽 운동 때문에 다크셔클이 내려앉았다.


진작 이광호의 에세이 '너는 우연한 고양이'와 미로코마치코의 그림책 '고양이 관찰기'를 보았다면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고양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 이광호는

에세이스트 출신답게 문장은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듯 감미롭고 달콤하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고양이의 행동 양상들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이기적이라고 느껴지는 단독성, 적당한 게으름과 호기심과 장난기, 우아하고 부드러운 수염. 신중하면서도 재빠르고 명쾌한 몸의 궤적, 탄력적인 도약과 하강의 능력. 침착하면서도 과감한 출몰의 방식, 고요한 시선, 스노볼 같은 영롱한 눈


미로코마치코는 왠지 고양이가 없는 생활은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 것 같다며 평생 고양이와 모든 일상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의 그림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양이들의 사건과 사고를 재미있게 그렸다.


나는 이 둘의 말에 백분 공감한다.

지금처럼 늙은 어미를 병실에 홀로 두고 텅 빈 아파트에 혼자 있을 때
무서운 쓸쓸함을 달래 주는 이는
이 고양이 형제뿐이다.

미로코마치코의 고양이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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