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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 이언 매큐언/우달임 옮김

당신이 가지 않았던 길 그 끝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호텔 방을 나와 체실 비치를 서성거렸다.


오래전부터 예감해 온 불길한 일이 결국 생기고 만 것이다.


그녀는 결혼 첫날밤

“끈적끈적한 체액을 뒤집어쓴 원초적 혐오감과 본능적인 공포감’을 느끼고 호텔방에서 도망쳐 나왔다.


남자의 생식기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

그녀의 배꼽 아래에서 밤나무 꽃냄새를 풍기며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것은 그녀에게 더러움과 놀라움의 그 자체였다.


그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 남자의 혀와 성기는 사랑할 수 없었던 여자.

1998년 맨무커상 수상 작가인 이언 매큐언과 그의 작품 체실 비치에서


그리고 한 남자.

오직 결혼식날 만을 기다려 온 남자.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본 그녀의 육체는

“기묘한 얼굴 조각상 같은 튼튼한 골격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었다.


그렇게 관조적 대상에 불과했던 그녀의 육체를 합법적으로 탐할 수 있었던 첫날밤.

그는 남자로서 완전히 실패했고

그녀로부터 ‘구역질 나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그녀도 그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섹스는 나의 일부가 아니야. 난 그게 싫고 또 생각조차 하기 싫어”


그는 연애시절 간간히 드러난 그녀의 회피가 욕망을 감춘 내숭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녀의 진실이 드러나자 

남자의 분노는 파도의 칼날이 되었다

그는 그동안 그녀에 대해 너무 예의 발랐고 소심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열락의 대상자가 아닌 사중주단에서 아름다운 모차르트 곡을 

연주하며 그 남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성기의 결합이 실종된 그녀의 사랑 방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미니 쿡의 연출로 제작된 체실 비치에서 2017년 제작되었다


결혼과 이혼이 같은 날 동시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 속에서

그녀와 그는 각자의 생을 일구어 가고 결국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 남자가 깨달은 사실.


“그녀의 진정성에 필적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라는 점과 ‘사랑과 인내’만이 관계 유지의 필수 조건임을 알았다.


이 소설의 작가 ‘이언 매큐언’은 우리에게 필요한 애정의 조건이 무엇인지 말하고자 한다


주인공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집안 배경과 취미, 성격의 차이를 극복하는 놀라운 애정 지상주의를 보여주지만 

결국 애정의 표현방식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헤어지고 말았다. 


지상의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반복되고 

결국 월하노인이 점지한 바로 그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남녀의 운명을 극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남녀 간의 만남과 이별이라는 단순 구조에서 

작가적 역량을 무겁게 느끼는 부분은 아주 디테일한 표현력에 있을 것이다.


특히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며 감각의 꼭짓점을 찾아가는 페팅 부분은 너무 섬세하게 형상화하여 독자들의 성감대마저 광분할 정도이다.


이 소설은 2018년 도미닉 쿡의 연출로 동명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노골적인 행위를 감추고 은밀한 내면 심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플로렌스 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의 연기는 

'이언 매큐언'이 극찬 힐 정도로 내면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육체적 관계의 승낙과 거부의 틈바구니에서 갈등하고 주저하는 그녀의 복잡한 심리를 눈빛과 표정 하나하나에 담았다.


이 소설과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더욱 쓸쓸해지고 이루어야 할 사랑의 부재 때문에 더더욱 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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