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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어디 있나요

- 하명희 / 북치는 소년

짧은 삽화지만 소설 한 편의 주제를 능히 감당한다



77억 개의 얼굴.

그리고 77억 개의 삶.

우연히 태어난 인간은 감내하는 낙타의 모습으로 이 생애의 사막을 건너간다.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돋보기 속에 비치는 각자의 삶은
매우 개별적이며 독보적인 인생들이다.


그래서

개인의 시간이 저물 때까지

타인의 생을 알기란 어렵고 깊이 있는 이해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인연의 그물망을 만들고

때론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며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70억 아니 7천만의 인구 중 몇 명의 사람을 알고 지냈을까.


나는 반평생의 이력 속에서

만나고 헤어진 인물들을 헤아려 본다.

부모라는 근원적 지점에서 출발하여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과정을 밟고

이런저런 직장과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온 인생.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

대략 100명 이상을 넘지 못한다. 그것마저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


생은 자신과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로 충만할 때 완성되는 것.

그러나 자아는 매일 만나는 존재이지만 타인은 매우 제한적인 대상이다.

그래서 예술이 등장했고 그 다양한 장르 속에서 주된 표현의 대상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고요는 어디 있나요의 저자 하명희 소설가


그중 소설은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 공감의 지평을 넓혀주는 만화경이다.


그 속에는

나와 비슷한 삶도 존재하며 미처 헤아리지 못한 예상 밖의 삶도 있다.

웃고 울며 한숨 쉬고 덩달아 같이 화를 내면서 소설을 읽는 사람은 결국 조울증 환자가 된다.


소설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엿보는 것이며 그것은 트루먼 쇼와 비슷한 관음 증세이다.

내가 알지 못하고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소설 속에서 만날 때

개인의 생은 지구별로 확대되고 우주인이 된다.


그런 점에서

하명희의 소설 ‘고요는 어디 있나요?’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별날 것도 없고 모자라지도 않는

평범한 내 이웃의 이야기가 고요하게 전개된다.

소설일까? 하면 수필 같고 수필일까? 하면 산문시 같은 짧고 짧은 소설 18편

가벼운 듯하지만 무거운 슬픔이 담고 있고

짧은 이야기 같지만 기다란 감동의 그림자가 마음의 끝에 누워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스쳐가는 평범한 사람들.

혹은 평범 이하의 사람들을 집요하게 관찰하며 그들의 생을 들려준다.


작가는 말한다.

무너지는 슬픔 앞에서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고립된 사람들. 그들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음을 이제야 알아버린 뒤늦은 편지일지도 모른다

눈먼 이웃집 소녀와 고양이, 노래방 도우미 출신의 반지하방 아줌마, 노숙자와 폐지 줍는 할아버지,

학교 밖 청소년들, 목포항의 사람들.

이 소설 속의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자아 밖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비로소 인간의 한 단면을 이해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인 헤밍웨이의 "for sale:babies shoes, never worn" 소설보다

더 뛰어나다는 격찬이 과잉된 칭찬이 아님을 그녀는 증명한다.


벌집 같은 단단한 겹 구조와 수학공식처럼 아귀가 딱 맞는 18편의 이야기는 

오랜 창작의 내공을 느끼게 한다.


'하명희'

그녀는 참 괜찮은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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