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지음/방미경 옮김

보잘 것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내 배꼽은 남들과 다르다. 

나는 이것을 확인하려 목욕탕 안에서 벌거벗은 남자들의 아랫배를 쳐다보며 

내 것과 비교하는 묘한 취미가 생겼다.


아무리 보아도 이상하게 생겼다.

남들은 요강 뚜껑처럼 주름진 꼭지가 달렸지만

내 것은 백록담의 분화구처럼 움푹 파였다. 


그 배꼽 안쪽으로

거머튀튀한 때 자국이 몰려들어 동굴 속 검은 박쥐들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항상 목욕을 하고 나오면 뜨거운 물에 불어 난 좁쌀 같은 때를 벗기기 위해 

검지 손가락으로 후벼 파거나 면봉으로 긁어내야 했다.

밀란 쿤데라(1929. 4. 1 ~   )


그럴 때마다

배꼽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염증이 생기기도 했다.

왜 나는 이따위 배꼽을 달고 태어났나라며 내 어미를 원망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배꼽을 보며

내 생명의 출발점이 강 씨의 성을 가진 한 여자에게서 왔음을 새삼 깨닫는다.

결국 배꼽은 배꼽으로 연결되어 먼 대과거의 최초에서 내 육체의 시원을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에서 남편과 자식을 버린 엄마는 수영장에서

물기 묻은 아들의  배꼽을 유심히 바라본다. 자신의 몸과 하나였던 ‘태아의 흔적’


우연히 태어난 생은 ‘누구나 자기 의지로 여기 있는 게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삶의 무의미는 시작된다.


아침에 눈을 뜨고

태양의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하고

별과 달이 지배하는 밤이면 우리는 조용히 잠을 잔다.

특별할 것도 없이 무한히 반복되는 삶.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특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고양이나 토끼, 산비둘기와 사막 여우들처럼 아무런 의미를 따지지 않고

그들처럼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면 될 뿐이다.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자신의 존재. 

그래서 밀란 쿤데라는 소설 속 인물을 통해 ‘하찮고 의미 없다는 말은 존재의 본질이에요’ 라고 말한다.

밀린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


그렇다고 삶의 무의미성은 결코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삶을 너무 무겁고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주 가볍게 중력을 거스르며 춤추는 무용수처럼 가배얍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라고

직설한다.


무의미한 일상의 모습이 

해석하기 쉬운 듯 어려운 듯 잘 버무려져 있다.

스탈린의 농담과 투신자살을 시도한 여자를 구하고 익사당한 남자, 

여성들의 배꼽에 대한 에로티시즘의 정의, 포르투갈과 파키스탄 언어의 무의미한 소통 등.


이 모든 무의미성을 뚫고 나가면

밀란 쿤데라는 무의미라는 이름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다"라고 직설한다.

바로 그때 삶의 축제는 시작되는 것이다.

의미 없는 삶을 유의미한 삶으로 만드는 것은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축제처럼 사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무의미의 축제를 즐기자고 밀란 쿤데라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요는 어디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