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페터 한트케/안장혁 옮김


페트 한트케는 독창적인 언어로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그 특수성을 탐구한 영향력 있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나는 아내를 ‘이’라는 지시대명사로 붙여 불렀다”

연애 시절 달콤한 애정은 사라지고 단순한 사물로 전락한 ‘나’의 아내.
서로의 증오심만 남은 ‘나’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지.  


그리고
어느 날 날아온 짧은 편지 한 통
‘나는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요’

애초 ‘나’는 결혼에 적합한 남자가 아니었어.


“묘지에 가기를 좋아했으며 묘지 담벼락에 기대서서 자살한 자들의 무덤을 세어 보기를 즐겼던”나였지.

‘나’는 우울의 밥을 먹고사는 음울한 남자였고 우리보다 혼자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지.
그리고 공포와 불안의 소나기 속에서 휘청거리는 허수아비였으며  얇은 유리심장을 가진 삶의 불구자였어.

그런 ‘나’가 결혼을 하다니……


그녀와의 관계가 뒤틀리자 나’는 변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떠나기로 했어.


18세기 소설가 칼필립 모리츠는 ‘안톤 라이저’에서 


“장소 하나 바꾸는 것이,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치 꿈을 잊은 것처럼 깨끗이 잊어버리게 만드는데 그렇게 많은 기여를 한다면, 
그거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했지.


‘나’는 미국 뉴욕으로 향했어.
굳이 그녀를 찾고 싶은 마음보다 새로운 풍경 속에서 새로운 느낌과 마음을 갖고 싶었지.


점점 낯선 장소와 사람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가 되어 가고 있었지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여자와 함께 '멕시코 소주'와 맥주를 마시고 때론 혼자서 영화를 보고 뮤지컬도 보았지.

그리고 그레이 하운드와 열차를 타고 옛 여자를 찾아 도시의 경계를 넘나 들었어.


'칼 필립 모리츠'의 ‘장소 하나 바꾸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됐어.


그래, 
여행은 망각의 선물을 주고 행복의 꽃다발을 선사하지.


점점 ‘나’를 둘러싼 유리막은 벗겨져 가고 일인칭의 ‘나’는 이인칭의 ‘타인’들을 포옹하기 시작했어.


'나'에게는
고트 프리트의 ‘녹색의 하인리히’라는 소설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


주인공 ‘하인리히’는 ‘나’와 유사한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이었고 아주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지.

‘나’의 아내 이름인 ‘뮤디트’도 그 소설에 등장해.

'고트 프리트'의 소설은 
‘나’라는 한 "인간의 발전 가능성과 그 희망을 선사"하고자 했던 '페터 한트케'의 의도와 딱 맞아떨어졌어.

사람과 풍경을 맞이할 때마다 번져 나오는 1인칭 독백자의 내면의식은 상상의 현실과 버물려져 그 문장은 낯설고 당황스럽지.

특히 서부영화 ‘철마’를 연출한 '존 포드' 감독과의 대화는 실재의 인물을 허구와 상상의 페이지로 불러들여 

‘나’의 의식변화와 정신성장의 증거로 삼고 있어. 

이렇게 말하지.

“아무도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우리는 외로워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혼자 있으면 무시당하고 자기 자신만 염탐하게 되죠”


‘나’는 ‘우리’가 될 때 자아는 확장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지. 


#2019년 노벨문학상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페터 한터케
#나는 완전히 삶에서 배척된 인간이야
#사랑이 커질수록 죽음에 대한 불안도 그만큼 커져


매거진의 이전글 야만인을 기다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