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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아름답고 서정적인 산문으로 곱게 짠 미스터리



나는 몇 년 전

충청도 조치원에 있는 오봉산 자락에서 산 적이 있다.


옛날 소 막사를 개조한 단칸방에서 셋방 살이를 하며 불시에 출현하는

바퀴벌레를 친구 삼아 고단한 잠을 청했던 시절.


삐그덕 거리던 방문을 열면 곧바로 양철 지붕 위로 새파란 하늘이 보였고 

삐죽삐죽 올라온 대나무들이 날카로운 창처럼 솟아나 있었다.


여름이면 산 위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메마른 마당을 거쳐 

곰팡 이내 나는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고 

겨울이면 시퍼런 창검을 들은 장수들이 천리마를 타고 달려 들어와 

나의 맨살을 난도질했다. 너무 추웠다.


방안은 

어디서 주워온 듯한 허름한 옷장이 비스듬히 방문 옆에 서있었고 

찌그러진 개수대 위에 황색 테이프로 붙인 환풍기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의 작은 창에는 불빛을 찾아오는 나방들과 바람에 쓸려 온 잎새들이 

끊임없이 날려 들었다.


그래도 4월의 봄날이 되면 탱자나무에 흰꽃이 피고 

어린 닭들이 늙은 감나무 아래에서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 시골 읍내를 통과하는 철길에서 기적소리가 들렸다.

또한

파란 지붕의 방앗간 주변에는 배꽃이 온 들판에 가득했고 둑방길에서 졸고 있는 

뱀 한 마리가 길을 막곤 했다.


나는 그때

별다른 세간살이도 없이 달이 지나가는 창문 앞에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쓰잘데기 없는 책을 읽고 끄적끄적 잡문을 썼다.

그야말로 찾아올 사람도 없고 찾아갈 사람도 없는 산 자락에서 혼자 사는 법을 배웠다.




마시 걸 ‘카야’는 노스캐롤라이나 아우터뱅크스 해변의 습지에서 혼자 살았다.

해안선을 따라 폭이 좁고 빠른 이안류가 흐르고 모래톱이 길게 이어진 곳.

혼자 보트를 타고 나가 물고기를 잡고 홍합을 캐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외로운 소녀.

저자 '델리아 오언스'와 그녀의 첫 장편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 앞에 엄마와 오빠들은

모두 집을 떠나고 결국 판잣집에 혼자 남은 ‘카야’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습지 소녀, 마시 걸로 부르며 극도의 집단적인 혐오증을 드러낸다.


점점 인간의 시선을 피해 우거진 갈대밭과 야자수 숲으로 달아나는 그녀. 소녀의 유일한 친구는 한낮의 갈매기와 한 밤의 반딧불. 그리고 흑인 부부.


혼자 있는 낮과 밤.

그녀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새의 깃털과 곤충, 조개껍데기를 수집하며 어머니가 남긴 붓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어느 날 찾아온 두 남자

그녀에게 글을 가르치고 함께 습지를 탐험하며

사랑을 느끼게 한 최초의 남자. ‘카야’를 끝까지 사랑한 금발의 소년.


두 번째 남자는 마을에서 소문난 바람둥이.

‘카야’의 야생적인 매력에 빠져 배설의 욕망으로 그녀를 탐닉하는 사내.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그는 시체로 발견된다.


마시 걸’ 카야’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며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생태 환경 속의 러브 스토리에서 법정 드라마로넘어가며 미스터리 한 살인 사건을 다루게 된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구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관찰한 생태학자 줄신의 작가답게 

습지 생태계를 묘사한 부분은 너무나 사실적이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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