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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 마르크 로제 지음/윤미연 옮김


책 읽는 즐거움, 함께 읽는 기쁨이 전파되는 수레국화 노인요양원 28호실의 기적!




나는 벌거벗은 18살 소녀의 몸을 보았다.

그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미와자와 리에의 헤어 누드집 

‘산타페’를 본 적이 있다.


허물어진 건물의 틈 사이로

육체의 어느 부분이 햇빛 속에 꽃처럼 피어나고

선인장이 핀 황폐한 사막 위에서

그녀는 나신은 

첫 번째 태어난 태초의 여자처럼 

이 세상 유일의 아름다움을 가진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내가 다시 

44살의 그녀를 만난 것은 ‘행복 목욕탕’이라는 영화에서이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해버린 시간적 비약 속에서

그녀의 옛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영화 속 그녀는 췌장암을 앓고 있는

시한부 인생이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가족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 

집 나간 남편과 그의 딸을 받아들인다.

미와자와 리에의 산타페와 행복 목욕탕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나는 이 장면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그녀는 빨간 장미 속에 누워있고 목욕탕의 화로 속에서

불태워진다.

그리고 굴뚝에는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욕탕 속의 남은 가족들은 ‘진짜 따뜻해’라고 나지막하게 말을 한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육신마저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바치고 사라진다.

그녀의 극단적인 가족에 대한 사랑은 충격적이기도 하다.


평생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문학을 사랑했던

피키에 책방 할아버지의 유골은 종이를 만드는 공장의 펄프 혼합 탱크에 뿌려진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영원히 책 속에 살아갈 것이다. 


'미와자와 리에'와 '피키에'는 살신의 공양으로 

평생 동안 사랑했던 대상들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바친다.


대중 낭독가 출신의 마르크 로제의 첫 소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는 책과 독서의 위대한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의 그림자인 그래구아르를 통해 낭독의 세계로 안내하며 

죽음의 대기장소인 노인 요양원에서 일어나는 마법 같은 일들을 다루고 있다.



죽음과 적막함이 가득 찬 곳에서 책 읽어주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실낱같이 남아 있는 생의 감각을 일깨워준다. 

끝내 임종을 앞둔 노인 앞에서

마지막 순간에 울리는 낭독은 천상으로 인도하는 

슬픔의 소리이다.


역자의 말대로 ‘문학과 책 읽기가 쇠락하는 신체와 정신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긍정적인 변화들을 다루고 있다’라고 말한다.


책이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고 자기 자신을 향해가는 행위와 같듯이 

책 읽기란 공감과 공유, 성찰에 이르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특히 소리의 세기와 고저, 빠르기와 느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타인에게 전해지는 낭독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환각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한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뛰어난 소설은 아니지만 ‘가볍고, 유쾌하고, 따뜻한’ 소설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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