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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여행하는 법

-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장석훈 옮김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단 한 번도 지상을 밟지 않은 무국적의 남자.

1900년 1월 1일.

유럽과 미국을 오가던 여객선 버지니아호,

1등급실의 그랜드 피아노 위에 버려진 아이.


그의 이름은 ‘나인틴 헌드레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배 밑 창에서  흑인 탄광 노동자의 손에서 어미 없이 자라는 백인 소년.


우연히 엿본 상류층들의 화려한 연회.

그리고 자신이 버려졌던 피아노 위에서 춤추던 88개의 건반.

그 순간 그 남자의 전설이 시작되고..

1998년 개봉된 피아니스트의 전설. 그리고 2020년 재개봉된 동명의 영화


지상으로 향하는 바다 위의 세계가 그 남자의 유일한 세상.

한 평의 땅도, 한 평의 집도 없었던 세상 밖의  남자.


누구의 몸에서 태어났는지

누구의 몸인지 알 수도 없었던 배 위의 피아니스트.


오직 단 한 번 

한 여자의 사랑을 따라 뉴욕의 지상에 내리고자 했지만

결국

자신의 피아노로 되돌아가 마지막까지 행복을 연주한 남자.

그리고 폐허로 남은 버지니아호와 함께 바다에서 소멸된 피아니스트.


한 인간이 어떻게 생의 쓸쓸함을 견디는지

한 인간의 전설은 어떻게 시작되는지.


1998년 이탈리아에서 개봉된

‘쥬세페 초르나토레’ 감독의 연출과 ‘엔니오 모리꼬네’가 영화음악을 맡은  ‘피아노의 전설’은 잘 보여 준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42일 동안 자기 방을 여행한 18세기의 남자.

1763년에 프랑스의 사보아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문학과 회화,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군인 출신의 저자.

불법적인 결투를 벌인 후 42일간의 가택 연금기간 동안 써 내려간 ‘내 방 여행하는 법’

‘로마와 파리를 보고자 그 먼길을 떠난 여행자들을 비웃으며’ 방 안에서 상상과 사색으로 가장 안전한 땅인 방 안을 여행한 남자.


하지만 가장 여행하기 어려운 자기 내면의 숲을 산책하며 세상을 여행한 남자.


방 외부의 물질세계의 탐닉보다 방 내부의 사소한 일상을 관찰하며 

매일매일 써 내려간 42일간의 일기장 같은 것.


방 안의 시간은

자신에게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이 내 뜻에 좌우되었다’며 자가 격리를 수용한 남자.

그 시공간 속에서 ‘18세기 문학사의 선구적 작품’을 남긴 남자.

“여행은 구경이 아닌 발견”이라며 “마르셀 프루스트, 수전 손택, 알랭 드 보통을 사로잡은 여행 문학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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