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준
나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 옛날 국민학교 4학년쯤
소년 한국일보 주최로 사생대회에 참여했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인다.
긴 하천 둑에서 해가 질 때까지 어린 소년은 베니어합판으로 만든 싸구려 화판에
흰 도화지를 올리고 크레파스로 과일가게를 그렸다.
딱히 과일가게를 그린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믿거나 말거나한 우리 집 전설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사과만 먹고 하루를 살았다’고 하니
사과를 좋아한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여하튼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하루 잘 놀았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그림대회는 한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지난번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 사실을 전달하는 선생의 얼굴도 ‘참 별일이네’라는 다소 황당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림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고 미술시간에 칭찬 한 번 받지 못한 내가 상을 받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긴가민가했는데 내심 아침 전체 조회 시간에 있을 시상식을 기대했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이었을까?
그날따라 교감선생님은 수상자 이름을 하나둘씩 불렀지만 이상하게 내 이름은 들리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그럴 리가 있나.
그런데 수업 시작 전 선생님이 날 부르더니 대뜸 상장과 기념 배지를 주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우리 집안 최초로 수상한 공인 상장은 알루미늄 박스에 고이 모셔 두고
가보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몇 번의 이사 끝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 전학을 간 국민학교에서 한 친구 녀석이 화실에 다닌다고 하길래 어떻게 여차여차하여
그 친구를 따라 본격적으로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게 되었다.
크레파스가 아닌 물감으로 판때기 화판이 아닌 이젤의 스케치 북에서 전문가에게 정식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나름 실력이 괜찮았는지 종종 칭찬도 듣고 했지만 그때까지 뿐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그만두게 되었고 아마 집안에서도 집안의 장남이 화쟁이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 그 녀석은 계속 그림을 그려 홍대 미대에 진학했고 지금도 그 녀석은 유명화가로 활동 중이다.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이름은 '평화'를 뜻한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전쟁'이었다.
그녀의 나이
6살에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고
16살에 교통사고로 11곳의 다리 골절과
하반신 마비를 겪은 후 총 35번의 수술을 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그녀의 결혼 생활.
세상 사람들은 ‘코끼리와 비둘기와의 결합’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자신의 살갗'보다
더 사랑했던 남자 ‘디에고 리베라’
그녀의 절망과 고통이 붓과 물감이 되고 사랑과 이별이 캔버스가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림을 배우지 않았던 칼로.
“내가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에 나를 그린다”라며 그녀가 남긴 총 143편의 그림 중 자화상이 55점에 달한다.
시인 박연준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라는 산문집에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 대해
‘불치병을 앓는 자가 울리는 기도이자 제사’라고 은유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칼로의 작품 ‘나의 탄생’ 외 9편의 그림을 시적 언어로 ‘번역’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한다.
“그림은 말하는 시이며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는
'시모니데스'의 말처럼 시와 그림은 심상의 이미지를 공통분모를 둔 회화성 높은 예술이다.
그녀의 산문은 비유와 상징, 은유의 시인답게 칼로의 그림 속에 드리우진 절망과 고통, 고독을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결부하여 유려한 문장으로 채색했다.
그 밖에 시인의 주관적 사족들이 별스럽게 엮게 있어 다소 책의 구성미는 떨어진다.
그렇지만
화가와 시인의 시선으로 본 질경이 같은 절망과 고독, 사랑과 이별의 의미를 엿볼 수 있는 빨간 산문집이다.
#나는_그냥_상처의_새끼예요
#나는_한 마리_ 첼로_작은_못들을_삼킨_첼로다
#그녀의_마지막말_이_외출이_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