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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 프랑수아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내가 처음 이태원을 방문한 것은 대학 입학을 한 그 해 가을쯤이다.

그때 참 별스러운 짓을 하고 다녔다.


당시 하숙집 주인의 아들이었던 학교 선배와 황신혜를 닮은 그 선배의 애인과 함께

이태원에 있는 성인 나이트클럽을 간 적이 있다. 


아마 지방 출신의 촌놈에게 서울 밤문화의 신세계를 보여주려는 

고마우신 선배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이미 대낮부터 부어라 마셔라 폭풍 음주를 달린 

상태인지라 클럽 안의 춤추는 사람들이 반딧불처럼 몽환적으로 보였고

나는 너무나 예쁜 황신혜 님을 닮은 여자 앞에서 

횡설수설하며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연신 내뿜었다.


무대 중앙은 사이키 조명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사람 둘은 온몸을 바비꼬며 

병든 문어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을 무렵.

나는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무대 중앙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리고 양키 제국주의 문화를 결사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는데 바로 그것은 ‘농민 춤’이었다.


나는 전후좌우로 비틀거리며 춤을 추고 팔을 휘젓자 댄스홀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듯 

양쪽으로 쫙 갈라지고 팔짱을 낀 무도인들은 어리둥절 또는 경멸에 찬 눈빛 광선을 내게 보냈다.


결국 술기운에 스텝이 꼬이면서 발라당 넘어지고 급기야 심상치 않은 클럽의 분위기를 포착한 

선배는 나를 질질 끌고 들어가 테이블 의자에 앉히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요즘 이태원 이야기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자주 언론매체에 등장하면서 

그때 그 일이 다시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하룻밤 광란의 춤바람으로 자신의 고단함은 풀었지만 주변 사람에게 끼친 민폐가 어마어마하다.




어릴 때부터 화려한 파티를 즐기며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었고 

9살 때 배운 운전 기술로 자동차의 속도에 열광했던 프랑수아즈 사강. 


그녀는 19세 때 푸른 노트에 쓴  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어린 나이에 부와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되었다.


그녀는 재규어 xk140을 시작으로 삼지창 마세라티, 페라리 등을 구입하며  제임스 딘 보다 더 격한 

속도 중독과 도박 중독에 빠져 들고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나는 나를 파괴할 권한이 있다’라고 당당히 외쳤다.


그래서

유럽 문단에서는 그녀를 ‘매혹적인 작은 악마’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그녀인 ‘슬픔이여 안녕’의 주인공 ‘체실’를 통해 그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볍고 자유로운 남자, 아버지를 닮은 체실은 구속받지 않는 사랑의 자유를 추구하고 

사랑의 대상이 없는 쾌락을 사랑한다.


오직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오렌지, 뜨거운 블랙커피’만이 그녀를 자유롭게 한다.

슬픔을 배우기 전에  중독된 열락과 쾌락을 먼저 배운 19살의 소녀.


그리고 그녀의 세계를 구속하려는 한 여자.

아버지의 여자 ‘안’

자신의 새어머니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도도하고 기품이 있었던 여자. 


결국 체실의 조작된 음모로 사랑의 상처를 입은  ‘도도한 여인’ 안은 결국 자살로 마감한다.


뒤늦게 안의 존재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체실’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며 비로소 슬픔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한다.

슬픔을 아는 자가 성년의 자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슬픔이여 안녕’은 굿바이가 아닌 새로운 감정에 대한 인사이다.

저자인 사강의  말대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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