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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 박물관

- 이수경 지음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한 노동자 가족의 불안한 생존의 연대기다. 




이른 아침. 

나는 12인승 승합차를 타고입장 휴게소 근처에 있는 선풍기 조립 공장에 일하러 다닌 적이 있다.

승합차가 두정동에서 신부동으로 넘어가자 한 두 명씩 타기 시작했고 

그들은 쪽잠을 자거나 굳게 입을 다문 채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의 빈 얼굴과  아침 풍경을 번갈아 보며 주먹 대장의 손처럼 부풀어 오른 

오른손을 연신 매만졌다.

옹이 진 손마디는 

작두로 끊어 내는 듯 아픔이 밀려왔고 거친 손바닥은 송곳에 찔린 듯 부르르 부르르 떨렸다.


문고리마저 잡지 못했던 희고 나약한 나의 손. 나의 일은 공업용 선풍기의 날개와 커버, 본체를 종이 박스에 넣고 포장하는 일.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시급 6,030원을 받으며 일하는 하청업체의 날품 팔이였던 나.


나는 이른 아침 무엇 때문에 공장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자기 의문 속에 빠져 있을 때

4월의 해는 포도나무 숲에서 떠오르고 승합차는 국도길을 비틀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때 

불쑥 앞좌석에서 메마르고 두툼한 손이 삐져나오더니 아카시아 껌 하나가 내 허리춤에서 멈추었다.


누구지?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바지 주머니 속에 껌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어린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너무 힘들어.

-그래 힘들지.그래도 좀 참아


엄마의 낮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승합차 안에서 맴돌았고 이어서 한 남자의 깊은 한숨소리가 

앞좌석에서 들렸다.

우연히 만난 하청업체 소속의 노동자 가족.

이 가족은 무슨 사연으로 이른 아침부터 승합차를 타고 선풍기 공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후 나는 아카시아 껌을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릴 때마다 그날 아침 들었던 한 가족의 짧은 대화를 기억했다.




소설가 이수경의 ‘자연사 박물관’은 학생 운동권 출신의 한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이수경 작가


80년대를 관통한 세대들은 일명 공활이라는 공장활동을 거쳐 현장 투신이라는 계급적 입장을 선택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한 민중에 대한 헌신은 학출이라는 계급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등장한 수많은 노동 소설은 노동계급의 혁명성을 부각하고 자본 계급과의 전면 투쟁을 소설의 주요 내용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전위적인 소설들은 도태하고 더 이상 우리는 노동 소설이라는 장르를 기억하지 못했다.


세계화의 역풍 속에 노동의 계급은 분화되고 수많은 파생적 노동자가 양산되면서 단결보다 분열이 연대보다 고립이 보편화되고 자본 계급의 통제 방식은 더욱 교활해졌다.

이수경의 작품은 노동자가 등장하지 않는 작금의 소설 세계에서 다시 노동자 또는 노동자 가족을 전면에 내세워 노동하는 인간들의 흔들리는 삶을 내밀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예전의 노동 소설이 과도한 계급적 이념과 전투적인 파업 투쟁을 다뤘다면 이수경의 소설은 사적 경험에 기반한 연작소설의 방식으로 노동자 가족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행복보다는 불행이
평온보다는 불안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한 노동자 가족을 지배한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7편의 수작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작가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같은 연작소설이 있었기에 나도 소설가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1970년대 난쏘공이 있다면 2020년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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