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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쥐 퍼민

- 샘 새비지 지음, 황보석 옮김


보스턴의 펨브로크 서점 지하에 사는 고독한 쥐 퍼민의 사랑과 환상, 유머와 감동, 그리고 문학과 인생에 대한 통렬한 자서전




참으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근래 서양 소설의 다양성을 실감하고 절감한다. 

특이한 이야깃거리와 참신한 구성 방식. 개성적인 인물들의 등장. 재치 발랄한 문장 스타일  

이런 요소들 때문에 외국 소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제야 문학의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문학의 국제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셈이다.


'소설 쓰는 쥐 퍼민'은 쥐를 의인화한 소설이다. 우연한 탄생으로 서점에서 살아가게 된 퍼민은 인간이 남긴 모든 저작물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내려가며 지적능력이 충만한 슈퍼 마우스로 거듭 태어난다. 책 읽기가 지루하면 각종 극장을 순례하며 벌거벗은 여인들을 구경하고 배가 고프면 팝콘을 주워 먹으며 작은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절대적인 고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퍼먼.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소통과 관계 형성의 신호를 보내지만 돌아오는 것은 상처와 배신뿐이었다. 


어쩌면 이 퍼민은 이 소설의 작가인 '샘 새비지'의 분신일 수 도 있다. 작가 역시 보통의 삶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특이한 인물이다. 작가는 퍼민을 통해 자신의 방대한 지적 자산을 자랑하거나 인간 존재의 가치와 삶의 무상함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소설이 시작되기 전 장자의 호접지몽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이한 경력을 가진 작가 샘 새비지


작가 샘 새비지는 입몽을 하고 본인이 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남기고 각몽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구조. 그런데 막상 현실로 돌아왔지만 본인이 쥐인지 새비지인지 모르는 상태. 작가는 환몽구조의 소설을 통해 인간의 허망한 삶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생쥐 퍼민은 1인칭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자신의 독서 편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첫 장부터 나보코프의 '롤리타'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유명 구절을 주절거리며 결국 영국의 유명 소설가인  매독스 포드의 '훌륭한 병사'의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로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은 내가 이제껏 들어본 가장 슬픈 이야기이다"


보스턴의 펨브로크 서점에서 13번째 생쥐로 태어나 어미와 형제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서점의 비밀 통로와 각종 서적들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던 퍼민.

그의 책에 대한 탐독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문학에서 과학. 기술. 의학 등으로 확대되며 심지어 악보를 보며 연주까지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한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카지노 극장에서 벌거벗은 여자를 보며 위로를 받고 리알토 극장에서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팝콘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퍼민. 턱이 없는 앞니가 툭 튀어나온 털복숭아 같은 퍼민은 닮은 꼴인 동족 쥐들과 상종도 하지 않은 채 고고하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의 취미와 생활의 절대적인 즐거움은 오직 서점으로 향한 쥐구멍을 통해 책방 주인장 노먼을 관찰하는 것이다. 퍼민은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손님들의 외모로부터 성격을 예측하는 일에서라면 그는 정말 셜록홈즈였다. 그들의 의상, 그들의 억양, 그들의 머리 모양, 심지어는 그들의 걸음걸이로부터도 그는 한눈에 그들이 좋아하는 종류의 책을 알 수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책 처방자이지 않는가.

그야말로 노먼은 책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였다. 하지만 쥐를 친구로 둘 만큼 생태주의자는 아니었다. 퍼민은 단순한 쥐로 보일 뿐. 인간의 책을 통째로 섭렵한 지적 우월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퍼민은 노먼이 놓은 쥐약을 먹고 죽음의 직전까지 몰리게 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린다. 

또한 책에서 배운 수화를 어린 숙녀들 앞에서 '굿바이 지퍼'라고 하며 지행합일을 실천해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인간들의 무자비한 몽둥이 세례뿐이었다. 결국 한쪽 다리를 다친 퍼민. 그 어느 누구의 친구도 되지 못한 외톨박이 인생 퍼민은 외로움이 숙명이었다. 하지만 끝끝내 만나게 되는 천사 같은 친구 제리.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순간 퍼민은 제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마침내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영혼의 친구 제리.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이며 비범하고 외계인적인 예술가'인 그는 퍼민과 친구 이상의 우정을 나누며 정성스럽게 보살핀다.

제리의 정체는 SF적인 소설을 쓰는 무명작가이며 본인 스스로 부자라고 자처하는 자유방임형 인물이다. 이 점 역시 작가와 거의 동일한 인물 유형이다.


제리는 펨브르크 서점의 모든 저작물을 통달한 퍼민의 지적 능력에 잘 어울리는 친구였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도 퍼민은 쥐 한 마리에 불과했다. 

퍼민의 원천적인 고독과 외로움은 해소할 길이 없었으며 친구인 제리와 함께 있어도 언제나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리의 죽음과 함께 스콜리 스퀘어는 파괴되었고 퍼민의 놀이터였던 하워드 극장과 리알토 극장은 폐허가 되고 만다. 퍼민과 가까웠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그 추억의 공간마저 무너져 내리자 그는 급격하게 늙어가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씹어 먹으며 고별을 고한다. 어쩌면 이 대목에서 이 소설은 유쾌하고 가벼운 소설이라보다 인간과 삶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우화적인 소설 인지도 모른다.


나는 떠나고 있도다. 오 쓴 종말이여! 나는 모두들 일어나기 전에 살며시 사라질지라. 그들은 결코 보지 못할지니 알지도 못하고. 그뿐 아니라 나를 아쉬워하지도 않고 그리하여 세월은 오래고 오래되고 슬프고 오래되고 슬프고 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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