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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무라카미 류 지음/윤성원 옮김

불안과 절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삶을 버티고 있을까?


이제 내 나이 오십 줄의 뒷자리, 석 삼자를 채우며 늙어간다. 까마득한 날에도 상상하지 못한 나이를 하루 세 끼처럼 꼬박꼬박 섭취하시며 오늘날까지 생명이 연장되고 있다.

무엇을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흘러온 시간들이 바다로 굽이쳐 온데 간데없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오늘의 헛된 망상과 내일의 헛된 기대 속에 살아간다.


이 나이쯤 먹으니 누구는 벌써 난데없는 죽음을 당해 북망산에 돌아 눕고 누구는 호화찬란한 각종 소유물을 자랑하며 번쩍번쩍 살아가고 누구는 젊은 날 이루지 못한 꿈을 여전히 아랫도리에 붙들고 어거적 살아가고 누구는 30년 부부 살이 마감하고 뒤돌아서 각자 살아간다.


그동안 나는 오십 줄을 넘어서도 혼자서 구시렁구시렁 독백을 즐기고 거침없이 이리저리 마음 가는 대로 구름이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는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늘그막에 지성과 미모를 갖춘 박 씨 부인을 만나 안해를 얻고 일가를 이뤘으니 뒤늦게 무슨 복인지 모르겠다.


아직 적어 나마 손수 벌어먹을 수 있는 생계수단도 있고 죽기 전 소원이었던 동네 책방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내 나이 오십 줄의 인생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대다수 50대의 삶은  밥벌이 걱정과 자식농사, 건강염려증, 부모님의 건강 등 각종 걱정거리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밀려오고 오늘도 견디기 힘드니 내일도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미궁의 삶이 펼쳐지는 것이 필부들의 삶이다.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는 50대 중반이 보편적으로 겪는 각종 에피소드를  실은 중편 소설집이다. ‘중장년 세대의 이혼, 우정, 재취업, 가족 간의 신뢰 회복,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 늘그막의 사랑 이야기’ 등 5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55세부터 헬로라이프


50대 이혼녀의 재혼 분투기는 두 번째 남자 구하기의 고달픔 속에서 맞춤형 조건으로 만나는 짝짓기의 실상과 허상을 보여주고 출판사에서 정리 해고된 50대의 생계형 막장일과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과의 훈훈한 우정은 눈물겹다.


세상 물정 모르는 조기퇴직자의 재취업 도전기는 우리네 삶과 꼭 닮았다. 전관예우는 고사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일자리만 남은 전후세대. 아내도 자식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조기퇴직자의 모습은 우리 동네 아저씨들의 모습이다.


이와 동시에 위태로운 중년의 부인이 있었으니 남편과의 사랑은 시들시들. 오직 믿고 의지할 것은 개 한 마리.

비 오는 날 개와 정자 아래에서 따듯한 차 한 잔을 멋진 외간 남자와 나누는 50대 주부. 우중일 때 개와 함께 하는 산책은 그녀의 유일한 낙이다. 그리고 그 남자와 밀회는 이뤄지고. 이쯤 되면 그녀의 가정은 어떻게 될까?


마지막 이야기는 참 눈물 없이 한 글자도 읽을 수 없는 순애보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 젊었을 때 이혼하고 60이 넘도록 혼자 살고 있던 장년에게 운명처럼 만난 한 여인. 그것도 낭만적인 헌 책방에서. 몇십 년 만에 찾아온 진정한 사랑 앞에 어쩔 줄 모르는 늙은 사내.

아, 사랑이라는 것은 다 늙은 나이에도 살아 있는 영원불멸의 환각제임을 알 수 있다.


전체 5편의 중편은 삼척동자도 거침없이 읽을 수 있는 매우 쉬운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고 아동물은 아니다. 귀찮은 미사여구는 쑥 빼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만 남은 소설이다. 짧게 짧게 단문을 치면서 이야기를 쭈욱 앞으로 끌고 가는 힘은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일단 재미가 있다. 더구나 독자가 50대이라면 ‘뭔 내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았어’라는 공감대가 일어날 것이다.

이게 이 소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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