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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 유성호 지음

이제 그에 대한 가없는 흠모와 사랑과 기억의 힘으로 이 조그마한 책을 '나의 조용필에게' 바치고 싶다




그때 진주 공설 운동장에서 뽕뽕거리는 신서사이저에 맞춰 디스코 풍의 신나는 리듬이 뽀얀 먼지 속에서 쿵작 쿵작거리고 있었다.

빡빡머리 어린 중딩 소년은 먼발치에서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용필 아저씨의 얼굴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을 즈음 무대 중앙을 완전 장악한 단발머리 소녀들은 단발머리를 들으며 오빠, 오빠를 연발했다. 


그 날 도떼기 시장 같은 혼잡한 분위기 속에서 용필 오빠는 시종일관 초연한 자세를 견지하며 위대한 탄생 밴드와 함께 극강의 아우라를 펼쳐 보였는데 이것이 내 어린 날의 희미한 추억 중의 하나이다.


5천만이 알고 있는 국민 가수 조용필.  

“60년대 미국의 밥 딜런이 있다면 80년대 한국에는 조용필이 있었다”라며 그를 세계적인 가수로 등극시킨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이라는 책을 펴낸 한양대 국문학과 유성호 교수이다. 


저자는 가수 조용필이 아닌 시인 조용필로 탈을 바꿔 그의 노랫말을 문학 평론가의 시각에서 정밀 분석한 후 보편타당한  해설을 이 책에 달아 놓았다.


가령 1981년에 발표한 ‘고추잠자리’는 “어떤 세계를 한없이 그리워하며 서정적으로 탈환해가는 예술이요. 가장 아름다웠던 세계를 복원하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라며 영광스럽게 백석의 시를 슬쩍 가져다가 그의 노랫말을 호평했다.

그리고 1982년 발표한 노래 ‘생명’에 대해 “명백히 광주의 학살에 대한 분노를 담은 곡이며 내 나름의 투쟁이었다”라는 사실을 밝혀 조용필이 시대의 곡절에 무심치 않은 진정한 우리 시대의 가왕임을 증명했다.


유성호 교수는 조용필의 노랫말을 꿈, 바람, 고독, 시간, 인생 등 몇 개의 단어와 주제로 묶어 분석 해석함으로써 가수 조용필이 “위안의 미학을 가진 꿈의 사제이자 한 명의 엔터테이너이며 노래 연기자” 라고 평가했다.


무의미한 노래 가사와 현란한 춤사위가 범벅이 되어 이상야릇한 음악이 대세를 이루는 지금.  

아름다운 노랫말과 정확한 가사 전달력으로 질곡의 80년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위안과 용기를 준 조용필은 지금도 자신의 음악을 계속 정련하고 있다.


우리가 조용필을 안다고 하지만 결국 아는 것은 구두코 위의 먼지에 불과하다.

문학과 조용필의 관계가 불화의 논리구조를 가졌지만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씨익 웃으면서 오늘밤 노래방에서 단발머리를 부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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