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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것 오늘 여기

- 김남일 지음


아시아 이웃 도시 근대 문학 기행 




내가 교토행을 결정한 것은 오직 단 한 권의 소설 때문이다. 

바로 미시마 유카오가 쓴  ‘금각사’라는 작품이다. ‘킨카쿠지’라 불리는 이 사찰은 순금 20kg과 금박 20만 장이 들어간 3층 전각이다.


이 소설의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는 “찬연히 빛나는 환상의 금각으로 어둠 속의 현실의 금각이 일치하는 허무의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각사’라는 극단의 시적 소설을 완성하며 언어의 궁극적 미학을 추구한 탐미주의자였지만 천황제 국가 재건을 외친 극우 보수주의자였다.


과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길래 극찬의 미사여구를 남발하며 그 ‘아름다움에 대한 반감’으로 전각에 방화를 했을까?


나는 순전히 금각의 아름다움을 찾아 교토로 떠났다.


내가 바라본 교토는 아름다움이 지천에 널린 예술적 공간 그 자체였다.

난분분 난분분 봄바람에 날리는 사꾸라의 향연과 벚나무와 수양버들 아래로 졸졸졸 흐르는 얇고 가느다란 시라가와 실개천, 그 주변의 오래된 목조건물이 둑방처럼 서있고 윤동주와 송몽규가 함께 거닐었던 가모가와 강변과 그 물결의 빛나던 윤슬은 바라볼 수록 처연하고 처연했다.

미는 절대적인 권력, 완벽한 힘이라고 했던 황금 전각 금각사

그러나 교토는 ‘대동아공영권의 철학적 정당성’을 제공한 침략의 사상적 근거지였다. 바로 교토 제국대학 ‘니시다 기타로’ 교수의 사색적 공간이었던 철학의 길이 은각사, 긴카쿠지 주변에 있다.


이토록 교토는 보이는 아름다움과 보이지 않는 추함이 공존하는 천년 역사의 공간이다.

소설가 김남일은 아시아의 이웃 도시 근대문학 기행문인 ‘어제 그것 오늘 여기’라는 책을 통해 아시아의 근대 역사와 문학 작품을 다루고 있다.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고도’라는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 교토의 풍경을 담고자 했고  나쓰메 소세키 역시 신문 연재 시를 통해 “옛 도읍 교토를 더욱더 적막하게 하는 보슬비가, 붉은 배를 보이며 하늘을 찌르듯이 날아가는 제비에 자극을 줄 정도로 세차졌을 때”라고 읊으며 교토를 “천년을 살아도 외로울 도시”라 말했다.


저자 김남일은 자신의 문학 여행을 ‘국가 바깥으로 달아나려고만 했던 내 젊은 시절부터의 관습’이라며 이 책의 첫 출발지로 사이공을 택했다.

저자 김남일과 어제 그곳 오늘 여기


사이공을 소설적 무대로 삼았던 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영국의 여행 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을 소개하며 베트남에 대한 서양인들의 인종차별적인 언급과 지난한 식민의 역사를 언급한다.

베트남은 1887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의 일원이 되면서 남부는 코친차이나로 불리며 완전한 식민지가 되지만 절대강국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결사 항전하며 끝내 승리한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이런 역사를 베트남의 작가 바오닌의 ‘끝없는 벌판’, ‘전쟁의 슬픔’과 반레의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을 소개하며 전쟁의 비극성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너무 멀고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작가 김남일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동양의 진주로 만들고자 조성했던 호찌민 시의 카티나 거리를 거닐며 쓰고 달콤한 연유 커피 ‘카페 쓰어다’를 마신다. 그리고 구스타프 에펠이 건축한 중앙 우체국 건물에 도착했을 때 지난 시절 지인에게 보냈던 우편엽서를 생각하지만 이제 그 옛날의 사이공은 사라지고 호찌민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더 이상 흰 아오자이를 입고 검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자전거를 탔던 사이공의 소녀는 없다. 단지 열대 하늘로 뻗어 있는 마천루와 베트남 최초의 지하철 공사만이 호찌민을 말할 뿐이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아시아의 역사는 식민의 역사’ 인지도 모른다.

상하이 또한 영국과 프랑스의 부분적인 식민지였다. 아편 전쟁의 패배로 난징조약을 맺은 중국은 상하이를 내주면서 화이하이루에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본 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심어지고 영국의 조계지 와이탄에는 네오 바르크, 로마네스크 양식의 고건축물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좁고 구석진 후퉁을 열고 들어가면 쪽방 탕쯔젠은 ‘궁핍, 불륜, 매음, 아편, 살인까지 일어나는 곳’이었다.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는 이런 상하이를 ‘중국 제일의 악의 도시’라 불렀고 상하이 출신의 중국 소설가 무스잉은 ‘상하이 폭스트롯’, ‘나이트 클럽 다섯 사람’의 작품을 통해 ‘상하이는 지옥 위에 만들어진 천당’이라고 악평한다.
푸동지구와 맞은 편 와이탄의 화려한 야경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와이탄 맞은편 푸동지구는 동방명주, 금무빌딩 등 마천루가 즐비하고 중국의 힘을 과시하는 굴기의 상징물들이 황홀하게 펼쳐저 있다.


이 책에서 저자 김남일은 사이공, 교토, 상하이, 도쿄, 타이베이, 하노이, 오키나와, 서울 등 8개의 아시아의 도시를 찾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드는 시간 여행을 했다.

무엇보다 그 시대를 대표했던 각국의 문학작품들이 소개되면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시아권의 주요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김남일은 “내 글은 기행문일 수도, 독후감일 수도, 아니면 그저 내가 꿈꾼 몽상의 기록일 수도 있겠다”라고 말한다.


어디라도 떠나지 못하는 팬데믹 시대. 백신 여권과 트래블 버블이 논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는 위험하고 여행은 불안하다. 당분간 여행 관련 책과 영상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다면 아시아 근대사와 문학을 동시다발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이 책이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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