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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슬픔

- 최돈선 지음/허영 찍음

매혹보다 슬픔에 더 가까운 여행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누가 그걸 예상이라도 했을까?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베트남 하노이까지 4,500km에 이르는 철길을 66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이 세기적인 열차 이동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폴짝 뛰고 있을 때 나는  ‘야 이거 베트남을 기차로도 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한반도에서 북상하여 중국 서남쪽을 궤뚫고 달리는 특별열차는 은하철도 999 이상이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출발하여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오르면서 기마민족의 본성이 온몸에서 일어났다.


경의선과 남북 동해선을 복원하면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연결되어 유럽 대륙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비행기로 이동해야 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인 최돈선과 허영
최돈선이 쓰고 허영이 찍은 ‘매혹과 슬픔’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3박 4일 동안 55개 역을 지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자작나무와 전나무가 어우러진 시베리아의 풍경과 까레이스키들이 겪었던 망국의 한 그리고 잊혀진 독립운동의 역사를 섬세히 기록하며 우리 민족의 시원인 바이칼 호수 속 올혼섬의 풍광을 담았다.


그야말로 이 책은 매혹과 슬픔의 산문이다.


저자는 ‘매혹’은 시베리아의 들판과 강과 삶을 쓴 부분이며 ‘슬픔’은 시베리아에서 일어난 슬픔의 역사를 담았다고 밝혔다. 


‘시베리아의 파리’ 라 불리는 이르쿠츠크의 아름다운 모습과 올혼 섬에서 만난 한민족의 시원 부랴트인의 삶을 매혹적인 문장으로 적었다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550명이 죽으면서 17만 명이 불모의 땅 중앙 아시아로 쫓겨난 망국의 역사는 슬픔의 문장 그 자체이다.


그래서 저자는 빅토르 최를 불러 내어 그의 노래 ‘엘렉트리치카’에 나오는 가사를 들려 준다. ‘기차는 나를,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가네’라고 말이다.


결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은 ‘벨루가 보드카와 시베리아의 별, 백석의 시 한 편’이 어울리는 낭만적인 유람은 아니다.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은 우수리스크에서 죽어 그 불탄 유해가 수이푼강에 뿌려졌고 까레이스키들의 따듯한 페치카였던 최재형 선생은 일본군에게 총살을 당했다.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최후는 민족적 수치에 가깝다.


그는 연해주를 떠나 중앙 아시아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후 극장의 야간수위와 정미소 노동자로 전전하다 1943년 76세로 사망했다.


이 책은 매혹보다 슬픔이 더 가까운 여행기이다. 그래서 저자는 늘 눈이 내리고 늑대가 울고 자작나무 위로 달이 뜨는 시베리아는 우리의 슬픈 생이 교직돼 있다고 말한다.


그 언젠가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붙들고 있는 펜데믹이 썩 물러나고 동해선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진다면 낡은 배낭을 다시 꺼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싶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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