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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한나절

- 남영화 지음


나는 가끔 그곳으로 들어간다. 


그 산 위에 숲이 있다.


천안과 아산을 가로지르는 낮은 산등선은 봄빛을 받아 연두색으로 하늘에 닿아 있고 그 아래 고속 전철이 발정 난 뱀처럼 얕은 가르마를 타며 내달린다.


산은 이미 자신의 몸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꽃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돌나무가 들어 서고 쇠똥구리가 기어 다니던 풀길로 무서운 자동차들이 질주한다.


산은 겨우 자신의 정수리만 남기고 모든 것을 인간들에게 내주었다. 산이 산을 만나 바다로 이어지지 못하고 지상의 섬이 되었다.


그 섬의 정수리에 올라 서면 연두색 반점들이 공중에 무수히 매달려 숲길을 밝히고 있다. 떡갈나무 잎을 뚫고 내려온 햇살은 땅바닥에서 흐느적 춤을 추고 산새들은 낮술에 취했는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봄을 맞이한 기쁨을 연두색 빛깔과 환희의 울음소리로 전해준다. 나는 나무의 집, 숲 속에서 세상 같은 것 다 잊고 보다 분명해진 나를 만난다.


그래서 ‘숲에서 한 나절’의 작가 남영화 씨는 ‘봄 숲에 아직 나뭇잎이 나기 전 연두로 서서히 봄물이 오르는 그 느낌을 나는 제일 사랑한다’라고 했다.

숲에서 한나절과 작가 남영화


그녀는 물맑음 수목원과 유명산 자연 휴양림에서 숲 해설가로 일했다.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숲 속에 살고 있는 꽃과 나무, 곤충들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학술적 내용이 가득 찬 식물도감은 아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숲 속의 신비를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에세이집이다. 거기다가 숲 속에서 배우고 느낀 인생살이 깨달음까지 덤으로 달고 있어 감동이 배가 된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방석 식물의 인내와 견딤을 발견하고 신이 맨 처음 창조했다는 코스모스 꽃잎에서 별무리를 발견했다는 비유적인 표현은 저자의 오랜 관심과 관찰의 결과들이다.


숲의 식물들이 방향 물질과 뿌리로 서로 소통한다는 이야기는 탐욕과 이기심에 물든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특히 나무는 뿌리로 서로 연결되어 큰 나무 사이에서 어린 나무가 햇빛을 잘 자라지 못하면 주변의 어른 나무들이 뿌리로 영양분을 나눠주고 그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니 몹쓸 인간보다 훨씬 낫다.


작가 남영화는 책의 말미에서 자연과의 깊은 교감 속에서 나를 만나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으며 그 아름다운 힘으로 위로받고 다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해 간다면 이 책의 쓰임이 다한 것이라고 했다.


정말 이 책을 읽고 나면 가까운 숲을 찾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며 예전에 보았던 꽃과 나무들 그리고 곤충들이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정말이다. 경상도 말로 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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