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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그림 엄마

- 저자 한지혜


악착같은 삶의 현장에 대한 정직한 응서, 변두리의 좌절과 비극 속에서 빛나는
따뜻하고 쳔연덕스러운 유머




아버지, 불쌍한 내 장난감
내가 그린, 물 그림 아버지


기형도의 ‘너무 큰 등받이 의자’에 나오는 시구이다. 한혜진의 소설 ‘물 그림 엄마’는 기형도의 ‘물 그림 아버지’ 구절을 변용한 제목이다. 기형도의 아버지는 중풍으로 돌아 누운 늙고 병든 가난한 사내였고 ‘물 그림 엄마’는 추레하고 남루한 삶을 살다 간 여자였다.


‘물 그림 엄마’ 속의 엄마는 극장에 버려진 고아였고 극장에서 유부남을 만나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었지만 결국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극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다가 기형도처럼 극장에서 갑자기 죽었다.


‘물 그림자 엄마’는 한혜진 소설 7편 중 하나이며 ‘무영을 가다’를 제외한 여섯 단편은 엄마라는 주제어가 소설의 강바닥에서 애틋한 울림으로 유영하고 있다.


작가는 “엄마를 마음 편히 사랑하지 못했던, 엄마가 내내 아픔이었던 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생의 귀결점이 엄마라는 부채의식과 맞물려 비애의 극단을 조성하며 우리를 막막한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나와 엄마, 엄마의 엄마와 연결되면서 신산한 삶들은 마디마디 이어지고 결국 엄마와 화해하지 못한 불편한 관계는 끝내 죽음 앞에서조차 사랑한다는 말 대신 안녕만을 고한다. 우리 각자가 안고 있는 엄마에 대한 기억은 웃음보다는 울음이 행복보다는 불행이 모든 회상의 전부를 지배한다.


그래서 엄마를 사랑하지 못하고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어린 날의 상처는 어른이 되지 못한 결핍의 아이로 남아 정신적 장애를 일으킨다. 단편 ‘환생’과 ‘함께 춤을 추어요’는 그런 점을 적시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라는 존재는 항상 삶의 밖에서 허우적거리는 절름발이 인생이며 그 어떤 화려함과 무관한 간난 그 자체이다. 그래서 쉽게 버림받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가 한지혜와 물 그림 엄마


‘분명 토마토를 끊이는 밤’은 돌봄의 안전망에서 벗어난 엄마들의 고통을 블랙 코미디 방식으로 전개하며 우리들에게 슬픈 웃음을 제공한다.


때론 소설가 한지혜는 지독한 리얼리스트처럼 비루한 생의 단면을 끄집어내다가 다소 몽상적인 서사구조를 딱 펼쳐 보이며 매우 흥미로운 세계로 우리들을 인도한다.


‘으라차차 할머니’ 편과 ‘물 그림 엄마’ 편은 ‘외봉 낙타’라는 고단한 삶과 ‘물방울처럼 한 생명이 태어나고 물방울처럼 한 삶이 사라진 생’을 이야기하며 엄마라는 존재는 엄마 이전에 ‘하나의 인간이었고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작가는 엄마와 그 가족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조각들을 그물망으로 촘촘히 직조하여 우리 마음속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잊힌 슬픔을 해수면 밖으로 끌어올려 울음을 터뜨리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누가 정혜를 죽였나’ 편에서 자신의 작품이 ‘폴더 안의 문학’으로 전락하는 두려움과 ‘소설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에 끼워주지 않는 거다’라는 푸념을 터뜨리곤 한다.

하지만 폴더 밖으로 나온 이 소설집 한 권으로 한지혜라는 소설가는 독특한 질감을 가진 작가로 인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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