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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부르는 노래

- 손세실리아 지음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나도 참으로 세상살이 재주도 없었는지 제주에 처음 여행한 것이 내 나이 33살 무렵이다. 누구나 엄마 아빠 손잡고 친구 손잡고 비행기 붕 타고 놀고 온다던 제주도를 그 무슨 신혼여행도 아닌 나 홀로 다녀왔으니 너무 때늦은 제주 여행이었다.


그때 제주는 거리마다 푸른 칼날을 품은 야자수 잎들이 불꽃놀이처럼 공중에 퍼져 있었고 어디서나 보이는 한라산이 마법사의 모자처럼 섬 중앙에 우뚝 솟아 있었다. 검은 땅이 끝나는 해변가에는 녹색과 연둣빛의 물결이 열두 폭의 치마처럼 제주를 휘감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 여행이 외돌개를 시작으로 아왜낭목에서 끝나는 올레7코스를 돌아 백록담과 사려니 숲길을 걸어 함덕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천 앞바다에 있는 시인의 집을 생각했다.


‘만조 때 수상가옥이 되고 썰물 때 잠겨 있던 너럭바위가 펄 위로 모습을 드러내 한 점 수묵화로 변하는 백 년 누옥’에서 벌써 10년째 책방 카페를 운영 중인 손세실리아 시인의 시인의 집.


설문대 할망의 점지를 받았는지 폐가를 사들여 친필 사인본으로 책방을 채우고 조천 바다 쪽으로 창을 열어 숭어의 도약과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군무, 아름다운 노을을 보게 하였다.

손세실리아 시인이 운영하는 북카페 시인의 집


구부러진 돌담길이 이어지는 골목 깊숙한 곳에 감귤색의 지붕을 올린 그곳은 사시사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진다. 


손세실리아의 두 번째 산문집 ‘섬에서 부르는 노래’는 책방 카페인 시인의 집에서 인연을 맺었던 추억의 사람들과 책방 탄생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자신이 만났던 여러 작가들의 이모저모를 다루며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럴 테면 황금빛 서정 화가 변시지,  문학 평론가 황현산과 염무웅, 문학 전문기자 조용호,  건축가 임옥상, 안동 여자 김서령, 소설가 박완서, 제주 시인 허유미와 이종형, 자카리아 무함마드, 문정희 등의 이름을 호출하며 우리 앞에 책의 성찬을 펼치고 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문단의 조수미라 부를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프로급 가수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와 전화로 주고받는 노랫가락은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모녀간의 사랑과 그리움을 담고 있어 읽는 사람마저 눈물짓게 한다.


손세실리아의 에세이 ‘섬에서 부르는 노래’는 산문의 양식에 운문의 융단을 깔아 읽기의 호흡을 조절하고 군데군데 삽화들을 진열하여 쉬엄쉬엄 활자의 둘레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어느 날 제주도 푸른 밤이 그리워지면 이 산문집을 들고 시인의 집을 찾고 싶어질 것이다. 그곳 백 년 된 누옥에서 시와 커피, 고요를 사랑하는 손세실리아 시인을 꼭 한 번 만나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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