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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직 않은 날들을 위하여

- 파스칼 브뤼크네르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고 일하고 춤추라




나는 일찍이 오래 살 마음이 없는 겁쟁이 꼬마였고 설마하며 오십을 넘긴 지천명 이상의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늙는다는 것은 오줌발의 기울기가 급격히 떨어지고 정수리의 흰모래밭이 헬기 착륙장으로 보이는 그리하여 밤눈이 어두워 고속도로 주행이 두려워지는 눈 뜬 장님의 신세 같은 것이다.


안경을 콧등에 걸치고도 안경을 찾는 치매의 전조 현상이 뜬금없이 몰려올 때 이렇게 늙음이 왔고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을 타박할 수밖에 없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대로 옹색한 몸뚱이를 맨바닥에 질질 끌며 꼰대질이나 일삼으며 하꼬방에 물러 나와 마른기침과 썩은 가래를 뱉으며 북망산에 갈 준비나 해야 하나.


죽음보다는 추한 삶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시인 브레히트의 말이 아니더라도 할 일 없이 빌빌거리고 욕망은 꺾여 오줌 구멍으로 전락한 생식기가 하찮게 보일 때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를 읽어야 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4대 문학상을 싹쓸이 한 당대 최고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이며 파리정치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74세의 노인이 쓴 늙음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이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철학자와 유명 인사들을 빵빵하게 호출하여 노년에 대한 매우 파괴적인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 무지막지하게 재미있고 기가막히게 설득력이 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한 노년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늦게까지 하는 것. 어떠한 향락이나 호기심도 포기하지 말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고 세상과 타인들에게 마음을 열어 두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구형 세단처럼 폼나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승사자 앞에 납작 엎드려 잔명을 구걸하거나 노인 요양원에서 맥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는 날들을 위하여


그저 낡은 몸을 쉬겠다는 생각으로 주는 밥이나 먹고 동네 놀이터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늙었다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포기를 포기하고 필요 이상으로 욕망하는 욕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괴테는 72세 때 19살 소녀에게 청혼을 했고 철학자 키케로는 14살 소녀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야말로 ‘백발의 왕관을 쓴 사랑’인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노화를 늦출 방법은 욕망의 역동성 안에 머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체적 욕망은 한계가 있는 법, 허리가 굽고 허벅지 근육이 말랑거릴 때 우리는 정신적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궁리해야 한다. 오직 지성과 감정의 즐거움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하지 못한 일을 도모하고 실행하며 ‘실험으로서 나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주어진 재능은 아직 허리춤에 묶여 있고 흥미진진한 삶은 여전히 현재에 있다.  


삶은 무엇보다 일종의 실험이며 황혼은 새벽을 닮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새로운 실험을 시작할 때 노년의 수명은 연장되고 삶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그렇다고 늙은 뱁새의 다리로 젊은 황새의 다리를 좇아가서는 안된다. 그저 단조로운 일상이 주는 깊은 즐거움을 만끽하며 새로운 도전을 펼쳐야 한다.


저자는 무미건조한 노년의 시간에서 늙은 이를 구원해 주는 것은 “일,  참여, 공부”라고 밝히고 있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은 물론 공동체에게 도움을 주며 참여를 통해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며 공부를 통해 자기 구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인생의 계절에서 가을에 새봄을 꿈꾸고 겨울을 최대한 늦게 맞이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안성맞춤이다.


지금 늙었다고 자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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