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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아침저녁으로 몸을 굽혀 자유자재로 물속을 비상하는 구피를 바라보며, 바라보고 바라볼수록 이목구비 달린 사람의 얼굴과 닮아 보이는 너는 인어공주인가?


아니면 형형색색의 부챗살을 펼친 우아한 꼬리 지느러미로 물길을 저어가는 너의 모습은 유영하는 물속의 공작새인가?


구피, 너의 이름은 인간의 이름이었으니 

1850년 처음 너를 발견한 영국의 식물학자 레크러어 구피의 이름에서 왔다. 

인간들이 너를 구피라고 불렀을 때  너는 인간들이 부여한 신성한 사다리 분류법에 따라 물고기가 되었다. 


그런데 너는 정말 물고기인가? 


인간들은 구피가 단지 비늘을 가졌다는 이유로 어류라는 종으로 묶어 버렸다.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한 채 인간들의 관상용으로 전락한 그리하여 사다리의 맨 아래층에 매달려 있는 물고기, 너는 인간에 의해 그렇게 구피가 되었다. 


하지만  왕성한 폐로 숨 쉬며 공기호흡을 하고 심장과 심실로 이어진 심장을 갖고 있는 폐어는 물고기인가? 아니면 음메하는 소인가?


과연 물고기는 존재하는 것일까?

생물학자이자 우생학주의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


과학자들은 비린내 나는 비늘을 벗겨 내고 연골과 내장으로 들어가면 인간과 유사한 ‘작은 머리, 척추골, 갈비뼈를 닮은 돌출가시’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인간과 물고기. 결코 인어 공주가 동화 속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가 물고기가 존재한다고 했을까? 바로 그 유명한 미국 스탠퍼드 대학 총장 출신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던 스타이다.  그는 물고기 분류학계의 진정한 스타였다.


얼마나 저명한 분인지 자신의 이름을 딴 산봉우리와 강, 호수가 있고 대학에는 심리학부 건물과 브론즈 흉상이 있다. 이 분께서는 전 세계 어종 1만 2천에서 1만 3천 종 중에서 2천5백여 종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이시다. 정말 스타이다.


어릴 적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 신비한 운행의 법칙을 알고자 했던 소년이었고 지상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사물들을 지도위에 깔끔히 정리하고자 했던 그는 ‘지구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던 과학자였다.


오직 자연을 연구하고 조사하여 신의 생각을 읽고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고자 했던 조던의 꿈은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를 만나면서 화룡점점을 찍고 조던 월드를 구축한다.


하지만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자신이 평생 동안 수집했던 물고기 컬렉션이 파괴되고 아내와 자녀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생이 만신창이가 되지만 조던은 특유의 ‘자기기만의 긍정적 착각과 낙관주의 방패’로 절망의 계곡에서 벗어난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영원할 줄 알았던 그의 세계는 스탠포드 부인을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으며 서서히 무너진다. 그 무너진 세계 위에 자연계가 아닌 인간계의 등급을 매기는 우생학의 불길한 탑을 올린다. 


가난과 범죄, 문맹의 원인이 대대로 내려온 혈통 속에 있고 이들은 부적합자들이며 지구 상에서 박멸해야 될 인류라고 주장한다. 그 방법으로 생식기를 제거하는 불임화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은 미국 사회에서 일대 광풍이 불고 실제로 법률로 정해저 합법적으로 진행됐다고 하니 독일 나치의 히틀러만 욕할 일은 아니다. 대개 유색인종과 남미 출신의 여성들이 부당하게 납치 감금되어 강제적인 불임 수술을 당하게 되었다.

과학전문기자 블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조인 스타는 자연과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수직화와 획일화된 방식으로 등급을 매기고자 했던 방식은 다윈이 주장한 ‘생명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과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는 명제에 정면 배치되었다.


물고기가 존재한다는 조던의 분류학적 주장은 그의 후배였던 1980년대 분류학자들이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붕괴되었고 한국계 미국분기학자 캐럴 계숙 윤의 새로운 학설의

등장으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신화는 끝나게 된다. 


특히 부적합자들을 박멸하고자 했던 반인륜적 행위는 미국 사회에서 지탄이 되었다.

그러면 누가 이토록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행적을 일일이 추적하여 기록을 남겼을까?


과학 전문기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는 책을 펴냈다. 그는 유명한 생물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와 과학과 철학 등이 혼합된 새로운 양식의 전기를 펴냈다.


룰루 밀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종들의 분류인 사다리층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의 최고 강점은 무엇보다 재미와 흥미가 넘친다는 것이고 알짜배기 과학적 지식과 더불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철학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책을 2020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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