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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가죽의 시

- 구병모 지음


왜 소설은 한 편의 시가 되어야 했던가





이 이상야릇한 소설을 뭐라고 해야 할까?


그림형제의 구두장이 요정을 모티브로 한 동화적 요소와 성인 남녀의 러브 스토리가 범벅이 되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아델라인의 영화적 요소가 가미된 매우 신비롭고 특별한 서사를 가진 이 소설은 구병모의 ‘바늘과 가죽의 시’이다.


요정인지 정령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 이 빛의 덩어리는 ‘바늘을 들고 춤을 추는 존재’들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가시광선 밖의 빛으로 존재하는 미확인된 물질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존재들이다. 겨울 숲 속 산사나무 잎에 내린 눈의 반짝거림에서, 하늘에서 가느다란 명주실로 내리는 빗줄기의 낙하에서, 내 절망을 이기지 못한 내 눈물의 슬픔에서, 그들은 ‘반짝이는 금속성의 빛’으로 살아온 불멸의 존재들이다.


수천 년 무한한 빛의 몸으로 존재했던 그들은 어린 노예와 구두장이 부부를 도운 대가로 인간의 옷을 얻고 늙지도 병들지 않는 몸으로 때로는 필요에 따라 얼굴의 형상을 바꾸며 ‘신이 머금은 한 번의 거대한 냉소에 불과한 인간의 삶’을 살아간다.


구병모의 바늘과 가죽의 시


유한의 옷을 입은 빛의 덩어리들은 인간의 삶을 찾아 세상 곳곳으로 흩어지고 얀이라고 불렀던 이안은 허무와 소멸로 가득 찬 인간의 시간을 건넌다.


무수한 전쟁과 재난의 시간이 지나고 늙지 않은 얼굴을 가진 이안은 오직 구두를 만들며 한 때 빛의 존재였던 그녀 ‘미아’를 기다린다. 그에게도 한때 인간을 사랑했지만 늙고 죽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이별을 선택했다.


사람의 형상을 가진 빛의 존재들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수한 애도의 시간들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무한의 존재가 유한의 존재를 먼저 죽음으로 보내는 것은 사랑의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를 넘어 동백꽃이 만발한 바닷가에서 춤을 추며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두 개의 그림자를 기꺼이 하나로 합쳐도 좋을 만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사랑이다.


한 순간을 살다가 사라지는 허무의 삶 속에서 단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소설가 구병모의 말처럼 바늘이 두 세계를 잇는 찰나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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