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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그들이 꿈꾼 세계, 그 마음에 새겨진 그림을 쓸쓸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


이 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1895년 4월 24일, 1956년 7월 19일


2009년 5월 23일, 2014년 4월 16일


전봉준과 박헌영, 노무현과 세월호. 교살과 총살, 자살과 살해라는 비릿한 죽음의 냄새가 슬픔과 뒤섞이어 남쪽 바다의 동백꽃으로 피어났다.


1895년에서 2014년까지. 소설가 손홍규는 왜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의 작품에서 이 네 사람의 죽음에 천착했을까?


녹두장군 전봉준은 현실의 눈으로 꿈을 보기 위해 죽음의 순간까지 보국안민의 깃발을 들고 황토현, 우금치에서 낫과 죽창으로 싸웠고 조선의 레닌 박헌영은 조선 공산당을 창건하여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평등과 자주 통일 세상을 꿈꾸었으며 노무현은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아, 그리고 세월호. 그 무엇이 꿈이었고  그 무엇을 꿈꾸었을까? 단지 4월 유채꽃이 만발한 그 바닷가에서 한바탕 까르르 웃으며 뛰놀고 싶었던 꿈.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각각의 삶이 마지막 하루를 향해 나아가는 4개의 이야기는 마치 4개의 단편처럼  느껴지지만 작가의 말대로 ‘대체 무슨 꿈을 꾸었기에 그들은 비참하게 죽어야 했는가’라는 화두를 따라 이야기 끝에 닿으면 이 소설이 하나의 완결된 장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4개의 이야기에는 원한을 푼다는 의미를 가진 해원이라는 인물이 전봉준과 박헌영, 노무현의 꿈을 연결시키고 그들의 꿈이 각각의 시대를 넘어 서로 스며들고 넘나들면서 실패와 좌절의 역사를 증언한다.

동학, 박헌영, 노무현 그리고 세월호. 손홍규의 소설,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해원은 눈먼 예언자의 모습과 내무성 지하 감옥의 청년 간수의 모습으로, 노무현의 고뇌와 생각을 탐문하고 관찰하는 혼령의 모습으로, 그리고 18년 후 세월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또다른 해원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들이 가졌던 꿈과 그 실패의 원한을 응시하며 마지막 하루를 지켜본다.


소설가 손홍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게 역사라면 우리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기억하는 건 소설이다. 소설은 기억이다’고 말했다.


그는 업적 중심의 역사소설이나 사건 중심의 다큐 형식으로 빠져 들기 쉬운 소재를 탁월한 문장력과 치밀한 구성력으로 극복하며 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다양한 서술 시점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 내고 때로는 추측하고 말을 건넨다. 문장은 작두를 탄 무녀처럼 신명이 나서 거침없이 앞으로 밀고 나가다가 때로는 속도를 늦춰 잔잔한 물결 위에서 종이배가 뜨다니듯 문장은 고요하고 나지막하게 이어져 그날의 비극을 차분히 보여 준다.


전봉준과 박헌영은 지난날에 대한 회상과 환영을 통해 감옥에 갇힌 현재의 모습과 자신의 꿈을 보여 준다. 죽은 자의 혼으로 산자의 고통을 보여주는 노무현의 5월 23일은 차마 생각하기 싫은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열여덟 살의 죽음이 시작된 탄생의 기쁨과 마지막 아이의 모습까지, 그 모든 것들이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목소리로 반추되고 기억된다.


전봉준과 박헌영, 노무현과 세월호.


그들이 꿈꾼 미래는 무엇이고 왜 감옥에서, 부엉이 바위 위에서, 남쪽 바다에서 죽어 갔는지. 우리는 손홍규의 소설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를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꿈이었던 이들의 끝내 닿지 못한 꿈’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꿈에 대해 “꿈은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정체를 드러내는 거였다. 눈이거나 마음이거나 상관없이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만 기적처럼 주어지는 거였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역사는 꿈꾸는 자의 시간이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며 우리의 꿈은 무엇인가? 또다시 우리는 꿈꾸는 자의 실패와 절망, 죽음을 겪고 싶지 않다. 그럼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2021년 반동의 무리들이 승냥이 떼처럼 동 트는 고갯마루로 몰려온다. 이제는 꿈을 이뤄야 할 시간이며 승리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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