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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 김해자 지음

땅과 이웃, 시 이야기




천안 사구실 마을 평평골은 시인의 마을이랍니다.  마을을 둘러싼 산봉우리들이 연꽃 모양으로 울타리를 치고 맹구 언니, 금례 언니, 영자 언니 등이 보살처럼 살고 있는 시골 동네입니다.


15년 전부터 아무 연고 없는 천안 광덕산 자락에 터전을 마련하고 초보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김해자 시인. 


팔순이 넘은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에 삶의 시들이 아로새겨져 있고 시인은 ‘그들의 말과 행동과 사연과 기쁨을 그리고 슬픔을 받아 쓰며’ 시를 이루었습니다.


그야말로 ‘밥 먹으면서 듣고 마늘 종자, 양파 모종 심으며 듣고 김매면서 듣고 마을회관에서 해바라기하며 듣’고를 반복하니 그대로 시가 되었습니다.


———-


하늘이 다 목화송이마냥 환혀


별이 고렇게 많아도 달 하나만 못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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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과 바람이 대지의 수평선을 넘나들며 인간과 자연에게 심장을 주고 흙 속으로 몸을 내린 농부들은 세계를 보는 시인의 눈과 입을 가졌습니다. 추상에 머문 뿌연 세계가 아닌 오감으로 느낀 물성 가득한 세계를 노동과 생활의 언어로 말합니다.


늙은 몸으로 한 해 농사를 꼬박 지어도 500만 원이 넘지 않는 가성비 제로에 가까운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정성스럽게 수확한 푸성귀로 청김치와 보쌈김치, 수구범벅을 만들어 서로를 공양합니다. 마을 곳간에서 웃고 떠들며 우정과 환대의 마음으로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수런수런 봉그러지는 웃음소리’ 가 들리고 ‘불려주셔서 고맙다고, 맛나게 자셔주니께 고맙다’고 인사를 나눕니다. 누구나 다 한때 어린 소녀였던 모습으로 웃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동네 언니들의 우정이 이것뿐일까요?


‘문두드려서 나가 보면 하얀 보자기에 든 밥솥 들고 서 있고 문 두드려 나가면 청국장 거의 다 끓었다고 서 있고 나가 보면 물 김치 통 놓고 가는 동네 언니’ 들이 수시로 시인의 집을 드나든다고 하니 시인이 이 동네를 떠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죽했으면 “나 죽을 때까지 쭈욱 여기 살아”라고 했을까요. 시인은 이런 증여에 가까운 우정과 환대의 시원을 “땅과 연결된 어떤 감각이 자연스럽게 나눔과 환대와 보시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라고 추측합니다. 나무도 뿌리가 얽혀 물을 나눠 가진다고 하지 않나요? 


그야말로 프랑시스 잠의 시처럼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인 것입니다.


김해자 시인이 펴낸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산문집은 대지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뿌리와 뿌리가 수분을 나누듯 이웃 언니 할머니들과 함께 정겹게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될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생태문명의 길은 대지에 기반한 민중적 삶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이 가진 천성이 가진 거 없고 볼품없는 이웃으로 향하고 그들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열어 ‘엎드려 우는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게 시’ 라며 이 산문집 또한 평평골에서 듣고 받아 적은 대지의 언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늘진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산바람을 맞은 듯 푸른 곰팡이가 핀 온몸이 맑고 밝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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