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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 뱅하민 라바투트 지음/노승영 옮김

인간의 정신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가,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천생이 문사철의 문과 태생이라 화생물의 이과는 이상한 학과라 생각하며 일평생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묵묵히 인문학을 추앙해 왔는데 언제부터인지 우주와 세계는 무엇으로 이뤄져 있으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궁금에 궁금이 더해 과학탐구의 초입을 서성이고 있을 때 바로 이 책을 만났습니다.


2021년 부커상 최종 후보작이자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가 바로 그 책입니다.


과학이 물질문명의 발전을 주도하고 인간생활의 편리성을 추구해온 어머어마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폭탄과 가스제작으로 이용되고 자연파괴의 원흉으로 인식되면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내놓은 과학적 진리들이 꼭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계속 우리는 세상을 계속 이해해야할까요?


도리어 과학자들이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이 세계는 안전하지 않을까요?


작가는 이 책에서 세계를 해석한 과학적 진리들이 어떻게 세상을 파괴했는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집착과 광기가 어떠했는지. 주장과 주장을 부딪히며 미시세계를 알고자 했던 물리학자들의 논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넘나 들면서 5편의 논픽션 소설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파란색과 나폴레옹이 유폐되었던 롱우드 하우스 벽을 장식했던 에메랄드그린은 합성안료 프러시안 블루에서 분리된 시안화물이었습니다. 


그런데 18세기 미술계에서 혁명적인 파란을 일으켰던 청색의 합성 안료는 죽음의 약이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후계자였던 헤르망 괴링과 독일제국의 지도부들은 시안화물 캡슐을 깨물고 스스로 죽었던 거죠. 그런데 이 아름다운 청색이 어떻게 독약이 되었을까요?


결국 몇몇의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달콤한 아몬드 향이 나는 독약으로 제조되었고 이 독극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와 같이 과학적 발견이 전인류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기도 했지만 인류를 죽이고 세계를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 또한 마찬가지 사례입니다. 그는 공기에서 빵을 끄집어낸 과학자이자 동시에 죽음을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인공비료를 개발하여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했지만 독가스 치클론 B를 제조하여 벨기에 소도시 이프로에 최초로 가스 공격을 감행하여 5천 명을 살상하였습니다.


어쩌면 과학이 인류를 위한 최선의 도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런 과학의 위험성을 느낀 한 천재 수학자는 세상을 버리고 부랑자처럼 떠돌았습니다.


바로 ‘알렉산드 그로텐디크’ 입니다.


그는 지구를 파괴할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몽유병자처럼 종말을 향해 행진하는 과학자들이라고 비난하며 모든 수학활동을 중단하고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유폐했습니다. 


인간의 지적 진화를 앞당기기 위해 머나먼 태양계의 외계문명에서 지구로 파견된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던 천재 수학자가 인류의 보호를 위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중단했던 것이죠.


작가는 물질세계의 해석을 둘러싼 물리학자들의 물고 물리는 격한 논쟁을 픽션과 논픽션을 쉽게 넘나 들며 아주 흥미롭게 서사를 이끌어 갑니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우주를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소’ 라며 물질세계의 필연적인 법칙을 주장하지만 닐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세계는 합리적인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을 가지고 노는 천수 여신의 변덕에서 탄생한 놀랍고도 희한한 세상’에 불과하다며 마침내 위대한 양자역학의 시대를 열어 갑니다. 


이 모든 내용들이 수학과 기호로 포장된 공식과 난해한 설명으로 서술되었다면 우리는 이 책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민한 작가는 여러 과학적 지식을 나열하고 설명하기보다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들의 에피소드와 허구적인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구성하여 읽는 재미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또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천재들의 집착과 광기를 허구적인 상상력으로 밀도 있게 그려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 앞에 절로 고개 숙이게 하는 진한 감동도 있습니다.


비록 수학과 물리학을 잘 모르는 독자일지라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묘한 힘이 각 페이지마다 마술처럼 펼쳐 있으니 인내심을 갖고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그로텐디크, 슈바르츠실트 등 세상을 이해하려 했던 위대한 과학자들의 생애를 알고자 YouTube를 들추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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