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에브리맨

- 필립 로스 지음

우리 모두는 언제 가는 늙고 죽는다.




그때 어머니를 모실 요양병원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를 물색하다가 한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일반 주택가에 위치한 그곳의 집중치료실은 얇고 가는 생의 한줄기가 미세한 신음소리를 내며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바깥 벽으로 다닥다닥 붙은 침상 사이로 어두운 통로가 검은 물처럼 흐르고 입원 환자들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산송장들이었다. 산다는 것을 잃어버린 몸뚱어리들은 모두 납작한 등을 침상에 댄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아기의 몸으로 태어났던 늙은 몸들이 긴 생의 바다를 건너 사멸의 땅에 닿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낮게 부르는 병든 몸도 있었다.


조금씩 생살과 약품들이 뒤섞인 역겨운 냄새가 스멀스멀 내 어깨를 타고 올라와 콧등에서 망나니 춤을 추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병원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와 낮달이 뜬 하늘을 보았다. 이내 밝고 환한 빛살들이 붉은 눈 속으로 빠르게 들어왔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나이팅게일’이라는 작품에서 ‘여기, 사람들이 앉아 서로 토해내는 신음을 듣는 곳, 중풍 환자가 몇 가닥 남지 않은 마지막 을씨년스러운 머리카락을 흔드는 젊은이가 창백해지고 유령처럼 마르다가 이내 죽는 곳, 무슨 생각만 해도 곧 그득한 슬픔이 밀려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필립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은 존 키츠의 시를 시작으로 한 남자의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둔 남자는 동맥에 여섯 개의 스탠드를 꽂고 마지막 경동맥 수술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평생 술을 먹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필립 로스 전기문 표지와 그의 작품 에브리맨

그동안 그의 육체는 ’ 몸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고안된 인공장치들의 창고‘였다. 한때 불멸의 다이아몬드를 사랑했지만 결국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애초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랐다.

9살 때 병원에서 만난 한 소년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공포가 시작되었고 해변가로 밀려온 불탄 선원의 시체를 본 후 공포심은 더욱더 깊어졌다. 어두운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노년에는 그림에 매달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는 죽었다.


어린 시절 성난 고래처럼 거친 바다를 해치며 수영을 즐겼던 소년은  탈장수술과 편도선 제거, 충수염, 신장 동맥과 경동맥 수술 등으로 이어지면서 혈관과 심장은 점점 낡아갔다.


한때 여성의 ‘작은 구멍’을 탐닉한 성적유희는 나이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의 세 번째 아내는 그보다 무려 26살이나 어린 여자였다. 그는 매우 활동적이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수컷의 발정은 점차 거세되었고 그는 ’ 죽어가는 짐승’으로 전락했다.


‘젊을 때는 중요한 게 몸의 외부지만 나이가 들면 중요한 건 내부야’라는 주인공의 독백이 슬프게 들린다.


결국 우리가 늙어서 맞이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노인의 전투’뿐이다. 하지만 그 전투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며 우리는 시간이 주는 ‘노인의 대학살’을 피할 수 없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지만 우리 삶은 봄밤의 짧은 꿈에 불과하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가 세 번의 이혼으로  가족이 해체됐을 때 자신에게 들린 것은 지인들의 부고와 투병소식뿐이었다.


한때 높은 자존과 귄위를 내세우며 여러 사람들을 압도했던 강한 남성도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했고 스스로 먹지도 배설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세상에서 완전히 밀려난 전직 동료는 정신병원에서 종이 인형을 오리며 권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금발의 여성은 병든 척추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모두들 그렇게 초라하게 가버렸다.

젊은 시절의  필립 로스 그리고 그의 부고

비록 그가 광고계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인물이었지만 은퇴 후의 삶은 외롭고 쓸쓸했다. 그는 ’ 친밀한 동반자‘가 필요했지만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뿐’이었다. 뒤늦게 후회와 자책이 밀려왔다. 급기야 제세동기가 있는 심장을 오른손으로 사납게 내리치며 울부짖었지만 과거는 변하지 않았고 현재는 그대로였다. 그의 평생 좌우명이었던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라는 주문도 소용이 없었다.


너무 늦었지만 그는 계속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우연히 다시 찾은 공동묘지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삶의 의욕을 느낀다. 필립로스는 묘지를 파고 있는 한 흑인의 이야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들려주며 우리가 직면하게 될 종말을 예고한다.


결국 한 생애가 폭 5미터와 깊이 10미터의 묘지에 묻히고 우리는 ‘무’의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삶에 대한 집착으로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새로운 충만감’을 얻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갔지만 그는 다시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 미성숙한 성적 모험가’라 불렸던 그는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토록 죽음과 신에 대해 ‘야바위’라 부르고 천국을 ‘낡은 공상’이라고 부르며 종교를 멸시했지만 결국 신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고 만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필립로스는 담담하고 건조하게 풀어 나간다. 주인공의 특정이름도 명명하지 않고 작가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그림으로써 누구에게나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은  ‘에브리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