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희 지음
개인적·사회적 비극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 비극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추는 작지만 따스한 불빛
한동안 나는 길을 걷다가 이상한 굉음이 들리면 반사적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이 있었다. 혹시나 그럴리는 없지만 아직도 뽀얀 연기를 내뿜으며 최루탄이 나의 머리로 날아오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80년 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최루탄의 난사와 페퍼포그에서 퍼붓던 지랄탄의 공포를 잊지 못할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어설픈 전경이 쏜 직격탄에 정강이를 맞고 몇 년 동안 절름발이 신세로 지냈다. 그때 느낀 공포와 충격 때문인지 큰 소음이 들리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본다. 하지만 하늘에는 새 한 마리가 까만 줄을 수평으로 긋고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임재희의 소설 ‘세 개의 빛’은 폭력과 고통, 상실의 깊은 터널에서 밝고 환한 빛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수십 발의 총격이 울렸다. ‘영 아시아맨'으로 불렀던 주범들은 그들이 당한 폭력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을 썼다.
그들은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로 숨이 막혀 올 때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한 아메리카인이 될 수 없었던 경계인의 절망감은 결국 무차별적인 총격으로 이어졌다.
임재희 작가는 소설 ‘세 개의 빛’에서 나도 그처럼 될 수 있었고 그가 쏜 수십 발의 총알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내가 쏜 걸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땅을 갖지 못한 이방인들의 폭력을 이해하려 한다.
그들 범인들 또한 똑같은 피해자라는 생각에 고통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열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의 희생자는 32명이었지만 가해자까지 포함된 추모석은 33개였다. 작가는 ‘폭력이라는 이름 앞에 희생된 사람은 33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또 한 명의 희생자가 있었다.
이민자 노아는 총격사건 뉴스를 보며 양아버지가 양어머니를 총으로 쏴 죽인 악몽이 되살아난다. 급기야 참을 수 없는 공포와 우울이 온몸으로 퍼지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Boy-1에서 노아, 동아로 이어지던 세 개의 빛은 사라졌다.
연인 은영은 노아가 죽기까지 6일 동안 있었던 그와의 추억을 기록하고 죽음과 같은 상실감을 치유하기위해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노아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노아가 탄생한 시작점과 입양을 가기 전 한국에 머물렀던 마지막 장소를 찾아 나선 그녀는 수많은 입양자와 흑인혼혈아 등 노아와 같은 운명을 갖고 태어난 슬픈 바리데기들의 삶을 들추어낸다.
노아는 Boy-1이었고 Boy-1은 동아였다. 한 죽음의 시작을 찾아 나선 은영의 여정은 노아에 대한 애도였으며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노아의 삶을 이해하는 뒤늦은 사랑이었다. 마침내 작가는 노아의 한 생이 은영에게 세 개의 이름으로 이어져 다가왔다며어느 것도 아니었던 노아의 짧은 삶에 밝은 빛을 비추어준다. 그리고 말을 한다.
노아 우리 춤을 출까요
우리에게 축제의 순간도 있었다고.
그들의 이름은 노아 해리슨 그리고 미셸 은영 송이었다.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도 아닌 회색 경계에 선 주변인들의 이름이었다.
임재희 작가는 주변인들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폭력의 공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우리를 환하고 둥근빛의 세계로 이끈다. 그것은 오랫동안 디아스포라의삶을 살아온 작가의 축적된 경험과 통찰이 빚어낸 희망의 빛이다. 작가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줄타기하며 경계인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우리 세계가 안고 있는 폭력의 그림자를 용기 있게 말하고 있다.
임재희 작가의 '세 개의 빛'은 2023년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