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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다가, 울컥

- 박찬일 지음


외롭고 삭막한 시대에 건네는 박찬일의 오래된 위로 




밤늦은 시간, 허기가 배꼽아래에서 외줄을 타고 서서히 심장으로 올라온다.  불쑥 헛구역질이 난다.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친 나의 혀는 거머튀튀 한 침을 흘리며 굳어간다.

배가 고프다.  달콤한 음식 냄새가 식당 골목에서 풍겨온다. 저 냄새라도 삼킬 수 있다면 배가 부풀어 오를 것이다.


그러나 더욱더 허기는 맹렬하게 긴 창을 내세워 아랫배를 계속 찌른다. 나는 그만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 엄마의 밥과 국물이 떠올랐다.


유독 엄마는 나의 낯빛을 보고 추어탕을 많이 끓여 주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후 햇살을 받은 빨간 고무 다라이에서 역겨운 비린내가 났다. 미꾸라지들이 거품을 내며 서로 엉킨 채 맴돌이를 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밥상에는 어김없이 추어탕이 올라왔고 우리는 일주일 내내 계피와 마늘냄새를 맡으며 한 그릇을 비웠다. 얼큰하고 시원한, 매콥하지만 달짝지끈했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글쓰는 요리가 박찬일의 '밥 먹다가, 울컥' (왼쪽 사진 한겨레신문 제공)


이렇게 음식에는 기억과 사람이 있다.

박찬일 셰프의 말에 따르면 말로는 할 수 없는 밥과 사람이 있다. 또한 가난이 있었다. 박찬일은 갱생원과 무연고 묘지가 즐비한 사대문 밖에서 가난과 주먹질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낡은 내복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서 돼지갈비를 굽고 두부조림을 무쳤다. 아버지의 부엌 벽은 휑하니 뚫려 있었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였다.



그는 학교를 종종 빼먹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여기저기에서 주먹질을 했다. 그럴 때에도 먹을 것은 꼭 빠지지 않았다. 동네 형들에게 얻어터진 후 고아원 출신의 찐개와 함께 길거리에서 나눠 먹었던 만두가 아닌 만터우의 맛, 소년원 출신 철수가 만들어준 두부 두루치기 그리고 친구 아버지의 함바에서 돼지비계와 막두부, 대파를 쓸어 넣고 끓인 김치찌개의 맛. 이 모든 맛에는 즐거움과 행복 대신 아픔과 괴로움으로 구겨 먹었던 슬픔의 음식들.


이런 추억의 맛과 배고픔이 박찬일의 성장배경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온통 눈물 나는 3류 인생들의 고전분투기이다. 그 슬프고 비루한 삶 속에서도 묘하게 뭔가를 먹었다. 그들은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살길을 찾고 죽을 길을 버렸다.


서울 모래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던 친구는 집 나간 아내를 찾아 중국과 전국으로 찾아 헤매다가 결국 적십자 병원 영안실로 돌아왔다. 값싼 3천 원짜리 짜장면이 친구와의 마지막 밥이 되었다. 그의 음식의 기억 끝에는 항상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한겨레 신문 제공


유럽 유학시절 스파게티와 송아지고기에 질린 박찬일에게 서울에서 고추장과 마른 멸치를 보냈던 정 많은 후배는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는 유럽으로 발령 났을 때 너무도 닭튀김이 먹고 싶어 살찐 비둘기를 치킨 삼아 먹었던 후배였다. 남은 것은 청파동의 포대포라는 돼지껍데기 집의 추억뿐이다.


뷔페에 식재료를 공급했던 친구는 돈 꿔달라는 마지막 목소리를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다. 갚지 못한 빚은 답례 교통비 봉투에 사과편지를 담았다. 그의 친구들은 울면서 육개장과 편육에 소주를 마셨다.  모든 것이 밥 먹다가, 울컥이다.


신산한 삶들은  늙은 식당주인과 요리사들에게 계속 이어진다. 마흔 개의 벽돌을 등짝에 지고 가파른 계단을 올랐던 청상과부는 시장바닥에 드럼통 2개를 놓고 식당을 차렸다. 딱 두평 넓이의 술천지에는 냉장고도 없다. 오직 술 손님은 팔십 먹은 노인네들. 차가운 술도 먹지 못하는 손님과 함께 술집은 낡아간다. 소금 안주에 인생 마지막 술을 마신다.


군산의 홍집 주인은 40년째 돌아오지 않는 옛 주인을 기다리며 주섬주섬 술손님들에게 안주를 주는 듯 마는 듯한다. 40년 전 친정 상을 당해 홍집을 맡기고 대전으로 갔던 각시를 기다린다. 믿거나 말거나 식당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기다린단다.


오후 3시와 밤 10시 하루 두 끼을 먹으며 숯과 튀김기에서 피어오르는 분진과 유증기를 간식 삼아 들이마신다. 기름빵에 화상을 입은 팔뚝은 요리사들끼리 통하는 동족의 문신이다. 고급 요리를 내놓는 호텔 요리사는 급식회사의 짬밥을 먹는다. 오봉에 4층 5층 밥 쟁반 쟁여서 음식을 배달하던 밥집 아주머니는 목 디스크에 척추측만증이 걸렸다. 생활의 달인이었던 사람은 결국 폐인이 되었다.

사진 한겨레 신문 제공

학창 시절 똑똑했던 친구는 가난 때문에 공고를 나온 후 조선소 용접공으로 일하다가 돼지곱창집을 차렸다. 그것도 여의치 않아 냉동창고 일을 한다. 인생이란 알 수 없다.

밥과 인생이 돌고 돈다. 박찬일의 산문은 음식이 소재가 된 인생 이야기다. 파스타를 볶는 이탈리아 요리사인 그가 책을 읽다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글재주를 가진 것에 놀라웠다.

하지만 그가 중앙대 문창과 출신이라는 사실에 금방 수긍이 간다. 음식의 맛을 내는 요리사답게 문장의 맛을 낼 줄 안다. 사람의 삶을 무치고 데쳐 독특한 맛을 내는 문장 요리사이다. 

그는 ‘맛은 삶의 일부이고, 인생은 삶의 일부이고, 인생은 수만 가지의 맛으로 기억되는 추억의 집합이다 ‘고 했다. 

그가 써낸 ’ 밥 먹다가, 울컷‘에 소개된 사람들은 맛과 관련된 사람이고 그 맛으로 기억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래전에 사라졌던 기억의 한 조각이 혀끝에 감기는 풍미 속에서 고개를 내밀 것이다.  나도 오늘밤 엄마, 엄마하며  추어탕을 먹으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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