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민주의 방

- 한열음 지음

지난한 삶과 치열한 방의 여정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방을 지나면서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며 흩어져 있던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흑백의 기억들이 모자이크처럼 서로 맞물리면서 녹슨 풍경들이 아득한 시간의 강물 위에서 물장구를 쳤다. 


내 고향 진주, 상평공단에는 유원연탄 공장이 있었다. 검은 화장을 한 인부들이 컨베이어벨트로 쏟아져 나오는 구공탄을 쉴 새 없이 용달차에 실었고 세 발 달린 트럭은 흑탄길을 비틀거리며 달렸다. 공장의 뒷마당에 적재된 석탄은 능선을 이룬 검은 사막이었고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면 검은 먼지가 공중에서 비처럼 내렸다. 


그 연탄공장의 담벼락에 우리 집이 있었다. 햇빛 좋은 날에도 빨래를 널 수가 없었던 파란 지붕의 슬레이트 집. 그곳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다. 열 개의 다리가 방바닥에 나란히 누워 가는 밤을 보내고 오는 아침을 맞이했다. 도화지만 한 작은 창문으로 해와 달의 빛이 방으로 스며들었고 내 몸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국민학교를 마칠 때까지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키 작은 은행나무가 있었던 마당에는 메리와 케리라 불렀던 잡종개들이 쇠줄에 묶여있었고 담 너머에는 외팔이 사내와 벙어리 여자가 부부를 이룬 방이 있었다. 그리고 옆방에는 내가 좋아했던 ‘미화’라는 여자아이가 살았다. 



소설 ‘민주의 방’ 은 누가 살았을까? 

2024년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부문 당선작, 임재희 작가 북토크에 참석한 한열음 작가(좌측 두 번째)


소설 속 투박한 두메산골의 남도 방언이 들녘에 핀 나팔꽃의 향기처럼 내 귓전에 달콤하게 들린다. 민주의 또박또박 내지르는 사투리를 듣고 있으면 배실배실 웃음이 터지도 나도 모르게 민주를 응원하게 된다. 

때론 계집애라는 이유로 먹고 입는 그 모든 것에 차별과 천대를 받고 멍석말이보다 심한 매질과 발길질을 아버지에게 당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때로는 민주 홀로 달빛아래서 눈물을 흘리지만 이불속에서 어금니를 깨물면서 인내와 결심으로 가난과 폭력의 방을 건너 넓은 세상으로 주춤주춤 나아가려 한다. 산과 들에 수북하게 핀 들꽃과 숲 속의 바람. 그리고 키 높은 나무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민주는 자신의 운명과 싸웠다. 


자신의 방을 갖는 것은 한 세계를 갖는 것이다. 그곳은 한 생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방이다. 민주는 ‘모두의 방’에서 ‘나의 방’ 까지, 계집에서 소녀로 성장하며 자신의 삶을 창조한다. 가난 때문에 미싱 공장으로 내몰리는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민주는 억울함과 좌절감으로 깊은 절망감에 빠지지 않는다. 그녀는 명랑과 낙관만을 유일한 의지처로 삼았다. 


서울로 올라온 시골 아이들의 방인 ‘소녀들의 방’에서 민주는 낮에는 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밤에는 야간 학교에서 주산과 부기를 공부했다. 삶은 계란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졸린 눈으로 미싱을 탈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 가 공장에서 울렸다.  무수히 많은 방을 거쳐온 민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하나를 붙들도 자신의 종이배를 위험한 바다에 띄웠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홀로 양초를 밝혀 책을 읽고 배움과 진학을 위해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오직 방 밖의 방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때 그 시절, 구로 공단에 있었던 대부분의 소년과 소녀들은 자신의 방을 갖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그 사투에서 무사히 다른 방으로 건너간 아이들이 있었고 끝내 자신의 방을 갖지 못한 채 산업재해로 사망한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일하는 기계로 내몰리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억울한 죽음들이 있다.


한열음 작가의 ‘민주의 방’ 은 한 소녀의 성장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80년 대 말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전라도 벽지에서 나고 자란 소녀가 어떻게 성년의 출입구에 도착했는지, 그 짧고도 긴 성장의 통로를 보여주며 그녀가 어떤 기대감으로 견디며 살았는지를 잘 그리고 있다.  물론 어린 학생들을 값싼 산업체 노동력으로 써먹었던 그 당시의 노동환경에 대한 언급이 다소 부족해 아쉬움은 있다. 


희망을 향한 개인의  분투가 처절한 고통으로 느끼지지 않고 다소 밝고 환하게 와닿는 것은 주인공의 천성이 낙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고통과 슬픔을 맛깔스러운 사투리와 농담으로 재밌게 처리한 작가의 능수능란한 문장도 한몫하고 있다. 작가의 필명처럼 변화무상한 열 가지 소리를 팔색조의 문장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배시시 웃음이 계속 터져 나온다. 우리 모두는 지상 위에서 자신의 방 한 칸을 갖기 위해 무수한 통증을 앓으면서도 지친 몸을 다시 대지 위에 세운다. 

방은 세계를 창조하는 장소이다. 먹고 자고 거주하는 물리적인 공간일 뿐 아니라 심장과 정신이 날개를 얻고 상상의 공중에서 집을 짓는 창조의 공간이다. 

민주의 방은 최초의 방이었던 엄마의 자궁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척지로 나아가는 기착지이다. 민주는 지난한 자신의 삶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당신의 방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밥 먹다가, 울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