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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적, 책방

- 반자본주의적 활동. 책방을 하는 이유

세상의 바보들이 책방에 모여 있다. 이들은 세상과 영합하고 시류에 편승하며 주식과 부동산으로 자산을 축적하는 자본주의적 경제활동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적들이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의 노동력을 갈고 갈아서 책방에 집어넣는다. 사람과 책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자리를 별다른 조건 없이 내어준다.


그들의 투입된 노동력만큼 산출된 결과는 무참하게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루 10시간 이상, 주말 또는 휴일도 반납하고 일 년 365일 동안 책방일을 하지만 생활비는커녕 임대료 내기도 벅차다. 한마디로돈도 되지 않는 일을 바보같이 하고 있다.


그들은 왜 책방을 할까?


2023년 국민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57%는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참혹한 결과를 내놓고 있다. 여기에 유튜브, 넷플릭스 등 새로운 미디어들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빠른 속도로 책 읽기를 대체하고 있다. 또한 2024년 지역 서점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동네책방 일일 평균 방문객은 36명이며(생각보다 많다) 연매출 5천만 원 미만의 책방은 31.6%이고 2억 원 미만은 10곳 중 7곳이라고 한다. 더구나 싸고 편리하며 굿즈까지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인터넷 서점과 전자책 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책방을 연다는 것은 세상물정모르는 얼치기 바보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세상의 바보들은 책방 문을 연다.


그들은 여기저기 동네방네 후미진 곳을 찾아다니며 다소 임대료가 싼 공간을 어렵게 마련하고 자신만의북토피아를 구축한다. 작은 공간을 적절히 나누어 책장과 매대를 설치하고 자신의 취향과 색깔이 드러나는 독특한 도서를 총판에서 구입하여 정성스럽게 진열을 한다.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손님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스탠딩 조명을 설치하고다소 구석진 어두운 자리에 플로어 조명을 설치한다. 갖가지 식물과 소품들을 군데군데 배치하여 앙증맞은 실내 분위기를 꾸민다.

책방 자체가 아름다운 예술품이 될 수 있도록 공간연출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가슴 벅차게 책방 문을 열고 사방팔방으로 통문을 돌린다. 인스타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에 공들여 촬영한 사진과 홍보성 문구를 다듬고 다듬어 올린다. 금방 책방이 손님들로 북적북적거릴 줄 알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출입문을 바라본다. 과연 첫 손님은 누구이며 첫 판매 책은 무엇일지 상상해 본다. 개업 초기에는 지인들의 축하방문이 이어지고 덕담을 건네며 몇 권의 책을 구입한다. 책방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무엇인가 싶어 출입문을 연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면 지인과 손님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책방은 그야말로 개인의 서재나 거대한 책무덤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 가문비나무아래 책방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그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사람들의 이동과 집결이 쉽지 않은 시기였다. 아내는 책 한 권도 팔리지 않는 날이 계속 이어지자 자신의 카드로 매출을 끊어보기도 했다. 혼자 책방에 무료하게 앉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는 일은 너무나 괴롭다. 그 황폐한 마음을 잠시 달래기 위해 아내는 도서 바코드를 찍고 포스기에 카드를 긁어 본다.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미운오리 새끼처럼 외롭고 쓸쓸한 것이다. 책방지기는 고독한 직업이다.


귀한 손님을 만나 책 한 권을 팔아도 많게는 30%, 적게는 20% 정도의 이익을 남긴다. 만 원짜리 책을 한 권 팔았을 경우 3천 원이나 2천 원정도 남는 셈이다. 100권을 팔아도 30만 원 수익이다. 그러면 도대체 몇 권을 팔아야 책방의 임대료를 낼 수 있을까? 그리고 관리비와 신간 구입비, 생활비를 벌려면 얼마나 많은 책을 팔아야 하는 것일까? 간단히 주판알로 계산을 해도 답이 없다. 책방업은 이미 사양산업이고 반자본주의적인 업종이다.


그래도 책방은 오늘도 문을 연다. 그들은 왜 책방을 아침에 열고 저녁에 닫는 것일까?

책방지기들의 이구동성은 책이 좋아서이다. 책에 대한 극한 사랑이 책방을 연 결정적인 이유이다. 책에서 얻은 지식과 감동이 책사랑으로 이어지고 이것이혼자만의 사랑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보편적인 사랑으로 확대하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책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책방을 연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모험적인 결정이다. 책사랑은 독자로 남아서도 충분하지 않을까?


또 다른 이유는 함께 세계와 인간을 공부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과거 80년대의 대학가에 있었던 '그날이 오면', '논장', '장백서원' 등 사회과학 서점들이 그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서점들은 사라졌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동네서점들이 다양한 읽기 모임을 통해 세계와 인간을 독해하는 공부를 꾸리고 있다. 예전의 80년대식 민족과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목적보다 공존과 공생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 강하다.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상호소통 속에서 민주 시민의 양식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목적실현을 위한 책방 창업은 사다리 위를 걷는 광대만큼 위험한 일이며 끝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이정표 없는 외로운 길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은 서촌에서 ‘오늘’이라는 동네책방을운영하고 있는데 한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책방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 질문에 대체로 따라오는 ‘어떻게 이익을 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간명한 답은 이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만성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 비이성적인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고 말이죠.


한강 선생의 말대로 책방은 비이성적인 활동이며 자본주의 잣대로 보면 이익은커녕 제 살만 깎아먹는 자해적인 행위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만성적자인 독립책방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약간의 공간을 현실로부터 임대해 신기루 같은 이곳을 만들었고, 자본의 논리와 상반되는 경영을 한 해씩 연장해가고 있다.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이 서점에 관한 어떤 일도 함부로 실패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우리가 현실의 시공간에 기입해 왔고, 지금도 기입해가고 있는 모든 일들의 의미를 언젠가 정확히 알게 될 순간까지.


책방창업의 이유와 의미는 나름의 논리와 주장을 품고 있겠지만 조금씩 현실의 민낯을 만나면서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다. 그때 버팀목이 되는 것은 그 이유와 의미를 매순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언젠가 정확히 알게 될 순간까지 말이다. 나는 아직도 책방을 여는 이유를 아침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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