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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땅, 라오스를 가다

1. 비엔티안의 꽃 파는 처녀


저녁 8시 40분 심야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로 간다. 아니 '라오'로 간다.


오래전 그 어떤 특별한 계기인지 모르지만 2012년 버킷리스트 8번째 순위에 랭킹된 여행지. 

탑승구 주변의 여행자들. 중년의 아저씨들이 단체로 김밥을 씹으며 심야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등산복이 여행자 전용 복장이 된 지 오래인 듯 거무튀튀한 상하의를 입고 우물쭈물 볼따구니가 불룩해질 정도로 김밥을 씹고 있다. 여기저기서 다가오는 또 다른 중년의 아주머니들. 단체 여행객들이 속속 모여든다. 라오스는 젊은 청춘들의 배낭 여행지인데. 이미 중장년들의 놀이동산이 되었다.


야간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그 순간 공포와 희열감을 느낀다. 삶과 죽음은 얇은 비행기 외벽 사이에 존재한다. 잠시 후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인지 땅을 달리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5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새벽 12시 30분. 지상으로 내려왔다. 


비엔티엔이다. 아니 '위앙짱'에 도착했다. 다소 쌀쌀한 새벽 공기이다. 지방 공항보다 조금 큰 왓타이 국제공항. 출국심사대까지 이동거리는 짧았지만 출국 심사는 길고 길었다. 군인 제복을 입은 그들은 전혀 급하지 않다. 

그 아래층으로 내려가 짐을 찾는다. 단출한 배낭 하나. 공항 안은 어둡다. 이미 자정이 지나 실내등은 꺼져 있고 상점은 이미 모두 철수한 상태이다. 

혼자 자유 여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심야의 공항 도착과 숙소까지의 이동이다. 지난가을, 북경 여행 때 그 후퉁에서 새벽까지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가. 

공항 로비에서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러나 극복해야 여행이 시작된다. 


공항 청사 밖을 나오자 쨉 싸게 따라붙는 묘령의 젊은이. 내게 '택시?'라고 묻는다. '다오비' 호텔이라고 하자 고개을 갸우뚱하더니 구글 검색으로 위치를 확인한다. 15달러를 내라고 한다. 비싸다. 'No'라고 하자 젊은 친구는 허리를 제치면서 어깨를 으쓱하며 두 팔을 벌린다. 미국식 흉내이다. 네 마음대로 해보라는 식이다. 정말 주변을 둘러보아도 택시라곤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다. 15달러에 간다. 젊은 친구가 앞장서더니 나를 차에 태운다. 그리고 마치 폭주족처럼 달린다. 그는 핸들을 급하게 좌로 우로 꺾으며 거침없이 달린다. 불안과 공포심이 밀려온다. 이 새벽에 외딴곳으로 납치를 하는 것은 아닐지. 거리는 가로등불 하나 없이 어둡고 어두운 비포장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이따금 여자를 태운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간혹 노천 식탁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인다. 대부분 잠이 들었는지 거리는 조용하다. 대략 30분 정도를 달렸을까. 젊은 친구는 정말 어느 시골 마당인 듯한 으슥한 곳에 들어가더니 차를 멈춘다. 사방은 어둡다.


이곳이 정말 호텔이란 말인가. 의심과 불안의 눈초리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젊은 친구는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뭐라고 외친다. 세 번 정도 외쳤을까.

어두운 한쪽 구석에서 부스스하는 소리가 나더니 실내등이 켜지고 모기장 안에서 자고 있던 종업원이 일어난다. 젊은 운전수 친구는 'Good Luck'이라며 싱긋 웃더니 15달러를 받고 냉큼 사라진다. 

호텔 종업원은 비몽사몽으로 여권을 이리저리 보더니 열쇠 꾸러미를 들고 방을 안내한다. 

2층이다. 꽤 넓은 방이다. 더블 침대이다. LG TV가 있다. 냉장고도 있다. 그리고 시원한 라오 생수. 큰 커튼이 벽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에어컨은 시원하게 돌아간다. 화장실은 낡았지만 깨끗한 편이다. 한국에서 2만 원대 싼 맛으로 예약했기에 불만이 없다. 간단히 몇 시간을 머문 후 아침에 비엔티앙 시내 중심가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아침 7시. 국경 밖 낯선 곳에서 나를 알몸을 발견한다. 그리고 들리는 닭 울음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들. 커튼을 열어 본다. 그리고 라오스의 첫 풍경을 대면한다. 


희뿌연한 하늘. 함석지붕의 키 작은 가옥. 그리고 작은 나무들이 풀밭 위에 듬성듬성 서 있다. 웃통을 벗은 남자가 긴 호수로 여기저기 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라오스의 아침이다. 라오스의 물로 샤워를 하고 여름옷으로 갈아 입고 밖으로 나온다. 

호텔 주인에게 시내로 나갈 수 있도록 '톡톡' 승차를 문의하자 탑승 위치를 말해 준다. 그리고 직진과 우회전, 좌회전을 손짓과 함께 웃으면서 안내한다.

나는 현관문을 나와 주변을 살펴본다. 이른 아침부터 종업원들이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있다. 호텔보다는 유스텔에 가깝다. 주건물은 3층이고 출입도로까지 방갈로 형태의 숙소들이 줄지어 있다.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자 넓은 저수지와 그 주변으로 움막들이 포진하고 있다. 호텔은 낙후된 시절이지만 넓은 유원지를 끼고 있었다. 다시 돌아 나와 '툭툭' 승합장을 향해 걸어갔다.  

큰 도로로 나서자 열대 야자수 나무가 쭉 도열해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톡톡. 하늘은 맑지만 점차 햇빛은 따가워진다. 그리고 습식 사우나 같은 열기가 아스팔트에서 올라온다. 도요타 트럭의 짐칸에는 두 명의 사나이가 탄 채 여유롭게 웃고 있다.  

오토바이는 2인 1조가 되어 차량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도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질서 정연하다. 경적소리도 없다. 저마다 하루의 밥벌이를 위해 쌩쌩 달리고 있다. 나는 이들 속에 낯선 여행자가 되어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톡톡' 앞에 섰다. 대략 5대 정도가 정차돼 있다. 운전수들은 여유만만하게 널브러져 있다. 

나는 'Bank'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무슨 뜻인지 모른다. 내게는 아주 기초적인 단어이지만 그들에게는 완전 외계어이다. 라오스의 말로 은행을 말하지만 당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어쩔 수 없이 지도를 펴서  은행 위치를 보여준다.  

그중 한 명이 알았다는 시늉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라오스 화폐인 '킵'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이다. 아직 환전조차 못했다. 나는 1달러를 흔들지만 그들은 즉각 얼굴이 굳어진다. 어쩔 도리가 없다. 빠뚜싸이를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 

약간 후회가 밀려온다. 왜 나는 시내 외곽의 호텔을 예약했단 말인가. 고작 몇 달러를 아껴 보겠다는 고약한 심보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다니. 

몇 걸음을 옮기자 벌써 땀이 맺힌다. 배낭을 멘 어깨는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여행 첫날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도로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그 위로 승용차와 트럭, 오토바이, 버스들이 뒤엉켜 있다. 국내 현대 자동차 차량들이 눈에 띈다.


노천 식당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식료품 가게 앞에는 펩시콜라 광고용 햇빛 가리개가 있고 검은 개 한 마리가 웅크린 채 엎드려 있다. 개는 멍청해 보일 정도로 온순하다. 옆을 지나가도 짖지도 않는다. 무료와 권태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 

라오스의 개는 개집에 있거나 사슬에 묶여 있지 않다. 자유방임의 형태로 방목되어 있다. 여기저기 공터에서 들개처럼 돌아다닌다. 이곳에서는 개도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리고 바나나와 망고, 사과, 수박, 파인애플 등 이름 모를 열대 과일들이 노천에 늘려 있다. 노랗고 푸르고 빨갛고 자줏빛이 감도는 과일들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돼 있다. 

순간 배고픔이 몰려온다. 아직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목이 마르지만 돈이 없으니 생수도 살 수 없는 형편이다. 힘든 여정이다. 

인도를 따라 걷자 'seta Business Administration College'가 적힌 대학 정문이 나타났다. 쇠 파이프로 기둥을 세우고 학교명을 라오스어와 영어로 표기한 간판을 달았다.

대학이라 하기에는 볼 품이 없다. 가게 앞마다 공통적인 특징은 불단을 세우고 향을 피우며 꽃과 바나나와 같은 공양물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여인들은 깨끗한 물과 음료수를 바치고 있다. 불교는 라오스인의 생활 그 자체이다. 경건함과 엄숙함이 뜨거운 공기 속에서 전해온다. 그리고 아이들의 높고 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고등학교이다. 낯선 여행자가 교문 앞에서 호기심 찬 눈빛으로 서성거리자 학교 수위인 듯한 아저씨가 들어와도 좋다며 손짓을 한다. 

나는 감사의 머리를 숙이고 교문 안으로 들어선다. 카메라가 귀엽고 생기 발랄한 소녀들을 향하지 그들은 승리의 V 표시를 한다. 라오스 전통 치마인 씬을 입고 있다. 검은색의 씬에 하얀색의 치맛단을 달고 있다. 하얀색 상의에 붉은 스카프를 매고 있다.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 않은 듯 교실 밖에서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리고 꽃 파는 노점상들이 인도 위에 줄지어 있다. 야자수 잎으로 고깔 모양을 만들고 주황색 꽃을 매달았다. 불단에 바치는 꽃이다. 그녀들은 돗자리를 바닥에 깔고 쉴 새 없이 꽃을 만들어 낸다. 

새까맣고 작은 발을 맨살 그대로 드러내고 발 뒤꿈치는 굳은살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대략 10미터 간격으로 꽃 파는 가게들이 있다.

나는 꽃 파는 처녀 앞에 섰다. 스물두셋 정도 보이는 아가씨이다. 양반다리를 하고 빠르게 손을 놀리고 있다. 그녀의 몸을 가릴만한 그늘은 거의 없다. 이미 판매대 위에는 30개 정도의 꽃들이 진열돼 있다. 이 많은 것들을 오늘 다 팔 수 있을까. 더구나 이렇게 꽃 파는 가게들이 많은 데 말이다.  


왠지 그녀가 안쓰러워 보인다. 사랑하는 애인은 있을까? 꽃을 판 돈으로 무엇을 하려고 할까. 그녀의 꿈은 무엇일까. 매일매일 똑같은 장소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며 지루하거나 답답하지는 않을까. 그녀를 보며 여러 가지 상념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진 촬영을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방긋 웃기만 한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카메라에 담았다. 밥벌이의 지겨움 때문에 지루한 생활을 한탄하고 힘겨워했는데 그녀 앞에서 참으로 부끄러워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묵묵히 일을 하는 모습에서 삶의 지고지순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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