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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여전히 너를 생각해!

- 내 생애 다시 한번 너를 만나고 싶어


안녕? 잘 지내. 여행 첫날 내 눈 앞에 펼쳐진 너의 모습은
반가움보다 앞선 놀라움 그 자체였지.



호텔 앞에서 아오자이를 입은 한 여인이 농라를 쓰고 가인항을 멘 채 비를 맞고 있었지.

이미 천 년 전 홍강을 중심으로 건설된 고대 도시답게 검은 나무줄기가 하늘로 치솟고 넓은 푸른 나뭇가지들은 도로 주변으로 그늘을 내놓았지. 어떤 나무들의 껍질은 거북이 등처럼 쩍 벌어지고 거칠게 도출되어 괴상한 느낌도 들었어.

하노이 이곳은 마치 거대 원시림에 인간의 도시를 자연스럽게 얹은 것처럼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였지.

낡고 흐름한 창문과 위태로워 보이는 발코니에는 열대 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고 누군가의 하얀 속옷이 널려 있곤 했어. 전봇대에 매달린 전신주들은 거미줄처럼 아무렇게나 건물과 건물로 이어져 있고 색이 바랜 각종 간판들이 가게에 붙어 있었어. 검게 그을린 벽면은 전쟁의 포화처럼 보였어.

카페 이층에서 바라본 하노이 36거리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된 바로크 풍의 건축물들이 인도차이나 전쟁 승리의 전리품처럼 진열돼 있고 그 앞으로 종류도 헤아릴 수 없는 다기 다양한 오토바이들이 오페라 하우스 앞을 질주하고 있었지.

과일 파는 아주머니들의 자전거 행상도, 시장 모퉁이에 모여 꽃을 파는 여인들도,  공용 화장실 앞에서 요금을 받는 사람도. 씨클로 페달을 밟는 아저씨의 허벅지에도, 길거리에서 바케트를 파는 할머니의 눈빛에도, 틈새 벽면 사이에서 쌀국수를 파는 소녀의 가느린 손바닥에도. 공사판에서 시멘트와 물을 배합하는 삽자루에서도, 노동의 힘겨움과 지루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지.

구시가지 거리마다 농라를 쓰고 열심히 일하는 하노이 여인들


참 신기한 일이야. 그저 묵묵히 자신의 주어진 일을 수행할 뿐 기쁨도 슬픔도 느낄 수 없었지.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잠깐 머무는 여행자의 짧은 시선. 더 깊은 삶의 우물들이 숨겨져 있겠지.




이상하게도 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살아온 생이 생각나더구나.

뭔가를 위해 달려온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도 어제의 기억은 사라져 버리고 현재의 모습만 거추장스럽게 보여. 그리고 항상 내일은 더 이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불안의 미래이지.

나는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막연한 내일의 시간과 직업적 공간 속에서 반복적인 생활을 하며 인간사 희로애락을 적당히 느끼면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잠을 자며 그렇게 살다가 죽음으로 가는 것일까?

그것이 내가 가고 있는 길일까? 삶의 의미 혹은 존재의 의미. 묻고 또 물어도 언제나 답을 찾지 못한 채 밥벌이에 쫓겨 적당히 살아가는 삶. 어쩌면 그것도 괜찮은 삶인지도 몰라. 나는 그런 삶도 살지 못하고 있지.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니?

성 요셉 성당을 만난 것은 정말 다행이었어. 사실 한낮의 무더위와 습한 공기, 소란스러운 오토바이 엔진 소음으로 다소 나는 지쳐있었거든. 

나무 그늘 길을 따라 걷다가 우뚝 솟은 성당을 보고 이곳이 하노이가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인 줄 알았어. 검게 바랜 132년의 생채기가 벽면 가득했고 아치형의 창문들은 수직으로 뻗어 있었어. 두 개의 종탑과 중앙의 십자가가 새의 울음소리와 함께 높은 하늘로 치솟고 있었지.


신의 현현인 태양의 빛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건물을 높였고 이 높이를 지탱하기 위해 '버트레스'와 '플라잉 버트레스'를 만들었어. 내부는 길고 큰 창인 '클리어 스토리'를 뚫어 많은 빛이 들어오게 했으며 천장은 '포인티드 아치'형태로 만들어 곡선미의 아름다움을 창조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야.


정말 신기하게도 성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소음은 사라지고 정적과 고요함만 남더군. 소란스러운 속의 경계를 넘어서자 성의 순결함과 평화가 내게 전해졌어.

프랑스 식민지 시절 1886년에 건설된 로마 카톨릭 성당


호안끼엠 호수에서 맴돌던 부질없는 고민들이 일순 사라지고 높은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만 존재할 뿐이야. 절대적인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고자 했던 인간의 염원이 나무 의자의 행렬 속에 줄지어 있고 여행자들의 숨소리는 공중에서 부유하며 원색의 스테인드글라스의 창으로 사라졌지. 밤색의 긴 의자와 천장을 향한 하얀 벽면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

정면에 보이는 예수상과 기학적인 문양과 정확한 대칭을 이루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름다웠고 환한 빛은 신의 강림을 보는 듯했지.

세속의 소음이 차단된 성의 영역에서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낀다


여기에서 무수한 하노이 시민들이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며 용서와 회해를 구해겠지

그리고 속의 세계에서 성의 힘으로 생을 밀고 나갔을 거야. 멀리서 찾아온 낯선 이방인에게도  충만한 성령을 내려주길....




인간의 영역으로 다시 빠져나오자 소음이 바로 밀려왔어. 국적을 달리하는 다양한 목소리. 그리고 어김없는 오토바이의 소음. 난 성당 근처 가게에서 맥주를 마셨어. 너무 무더우면 맥주는 술이 아니라 시원한 음료수임을 알았어. 말없이 성당 앞을 바라보았어. 호심탐탐 피곤한 여행자를 물색하는 씨클들의 허기진 눈빛이 보였어. 계속 주변을 맴돌고 있었지.

다시 길을 나서기까지 시간이 걸렸어. 한낮의 더위가 무서웠거든.

성당 주변의 작은 사찰과 카페, 각종 잡화점들이 골목을 따라 줄지어 있고 나는 맛있는 반미 빵을 찾아 나섰지.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길거리 카페로 들어갔어. 너무 발이 무거웠어. 이층은 아무도 없었어. 특이하게 요구르트가 섞인 커피를 주문하고 발코니에 있는 둥근 나무 의자에 앉아 골목길을 바라보았어.

오래된 건물, 삐뚤삐뚤한 창문과 아무렇게나 자란 푸른 나무, 가게마다 차양이 펼쳐져 있고 주인들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지. 여전히 씨클로와 오토바이는 지나가고 논라 쓴 여인은 폐지를 줍고 과일 행상 아줌마는 자전거를 끌고 있었지. 금발의 여행자는 큰 배낭을 메고 지도를 펼치고 있었지. 삶과 여행을 탐험하듯. 길을 찾고 길을 떠나고. 모든 것은 여행인 거지.
완전한 자유. 오직 한 풍경에 집중할 때 가능한 시간의 미적 가치


이층 발코니에서 마신 커피는 지금까지 마신 커피 중 가장 맛있는 커피였어. 오래된 하노이의 길목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달짝지근하게 온몸을 맛있게 만들었어. 자유와 행복함을 느끼는 잠깐의 휴식이었지.

이윽고 반미 25에서 빵을 샀어. 난 아직도 기억을 해. 돈을 꺼내기 위해 지갑을 뒤적거리다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여전히 포장된 빵을 들고 나를 바라보던 그 미소.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어. 

누군가가 나를 향해 웃어준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야. 사실 나를 향해 웃는 여자의 미소를 본지 너무나 오래되었어. 누구의 말대로 '외롭게 높고 쓸쓸하게 태어난 것이' 나의 운명일까?

파란 앞치마를 허리춤에 두르고 나이키 샌들을 신고  짧은 반바지를 입은 그녀. 자그마한 체구의 작은 얼굴. 

이목구비는 별처럼 촘촘히 박혀있었어. 

언젠가 다시 너를 찾으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노이 36 거리는 여행자의 발걸음에 따라 점점 어두워지고 멀리서 '비어'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어. 내 걸음이 조금 빨라지기 시작했어.

너와의 마지막 이별의 술잔이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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