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칠레의 밤

- 로베르토 볼랴뇨 지음,  우석균 옮김

가장 우스꽝스럽고 씁쓸하고 쓸쓸한 양심 고백!



로베르토 볼랴뇨는 대중들이 동경하는 우상의 파괴에 비타협적으로 투쟁하고 그 파괴된 폐허 위에 자신 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열었다. 일명 '인프라레알리스모' 운동을 전개한 볼랴뇨는 기존 질서를 깨부수고 전복시키며  새로운 양식을 창조한 문학 테러리스트이다.

칠레와 멕시코의 대문호였던 네루다와 파스 등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을 과도한 민중주의와 실천력 부재를 비판하며 우상숭배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를 가리켜 마르게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이며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추앙받는 소설가라고 칭하고 있다.


이 소설 '칠레의 밤'은 엄숙함과 종교적 가면을 쓰고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권력 지향적인 신부의 시선을 따라 서사가 전개되며 문체는 시적 은유와 상징이 넘친다. 그래서 다소 난해한 문장을 만나기도 하면서 읽기가 부담스러워 진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사진과 캐리커쳐(사진 출처: 열린 책들)


이바카제 신부. 절대적인 문단 권력자였던 페어웰의 후광에 힘입어 손쉽게 문학의 중심부로 진입한 그는 막강한 지위와 권력을 누린다. 조국 칠레는 독재자 피노체트의 폭압 아래 깊은 고통과 체념에 빠져 있었고 납치와 고문, 살인 등이 백주대낮에도 횡행했다. 시인이자 신부였던 이바카제는 이런 조국의 현실에 무관심한 채 태평스럽게 그리스 고전을 읽는 한심한 모습도 보인다. 다소 의심스러운 부정한 돈을 후원받아 유럽 지역을 순회하며 기껏 비둘기 배설물로부터 성당을 보호하기 위한 과제를 수행한다. 유럽 전역을 돌며 비둘기 사냥에 나선 매의 눈부신 활약에 경탄을 하지만 피노예트의 폭력에 신음하는 칠레 민중의 현실은 도외시한다. 

그는 단지 성호를 긋고 성자처럼 미소를 보일 뿐이다.

이바카제 신부의 권력 밀착적이며 시대착오적인 행보는 군사 쿠데타를 자행하여 사회주의 정부를 뒤엎은 피노체트의 공산주의 이론 학습에 개인 교사로 나선 것이다.

아무런 종교적 양심조차 없으며 시대에 대한 도덕적 인식도 없이 절대 권력에 맹목적으로 충성을 다 바친 이바카제 신부는 피노체트 독재군력의 부역자와 다름없다. 

작가 볼랴뇨는 이바카제 신부의 사제복에 감추어진 추악한 권력욕과 비열한 인간성을 고발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압권은 한 여류 소설가 지망생인 마리아 카날레스의 저택에서 일어난 희대의 고문 납치 사건이다. 감시와 통행금지가 일상화된 동토의 땅에서 예술가들은 밤마다 저택에 모여 파티를 연이어 개최한다.

이들은 새벽까지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예술 지상론을 논하며 그들만의 파티를 열고 있을 때 저택의 지하층에 서는 피노체트에 반대하는 민주 인사들은 불법적으로 납치 구금당한 채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연히 발견한 고문 현장마저 세상 밖으로 알리지 않고 은폐했으며 부당한 권력 앞에 침묵하고 만다.

이바카제 신부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말하는 예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일까? 

칠레의 암울한 현실을 외면하고 민중의 삶을 도외시한 그들의 예술은 눈먼 장님들의 소꿉놀이에 불과했다.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은 결국 독재자 피노체트 정권에 부역하는 반민족적 행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것은 비단 칠레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친일 예술인들이 시와 음악, 그림 등으로 일제의 통치 행위를 찬양하며 같은 동포를 징용과 정신대 등 사지에 내모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또한 독재 정권 시절 절대 권력자에 대한 찬미와 예찬으로 예술을 팔아먹은 문학 창녀들도 있었다.
칠레의 밤 전체 표지

비록 이와 같은 적극적인 부역의 혐의가 없더라도 순수 예술을 들먹이며 부당한 현실에 고개를 돌리고 저항의 목소리를 낮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바카제 신부가 과거의 영화가 사라진 '마리아 카날레스'의 저택을 찾으며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듣는다.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한다"

신부는 이 말에 대해  "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 멕시코, 과테말라, 스페인, 프랑스, 독일, 푸르른 영국과 즐거운 이탈리아에서도 그런 걸..............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싫어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

 

놀랍게도 '칠레의 밤'은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과 사건들을 기반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바카제 신부는 친피노체트의 성격이 짙었던 칠레의 최대 일간지였던 '엘 메르쿠리오'에서 문학 평론을 쓰며 칠레 문단의 막강한 영향력을 했던 이그나시오 발렌테가 그 모델이었다.

한편 저택의 지하실에서 자행된 납치 고문은 피노체트 시절 비밀경찰인 국가 정보국이 자행한 사건이며 미국 CIA가 개입된 사건이었다. 



시대와 역사의 격랑을 헤쳐온 이바카제 신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회한에 젖은 대화를 자신의 내면적 자아인 늙다리 청년과 나눈다. 


"내가 존경하던 얼굴들. 내가 사랑하고 증오하고 질투하고 경멸하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내가 보호해준 얼굴들. 내가 공격한 얼굴들. 내가 방어하던 얼굴들. 내가 헛되이 찾고자 한 얼굴들이...."

그래서 볼라뇨의 말대로 "인생이란 우리를 최후의 진실, 유일한 진실로 이끌어 가는 오류의 연속이다'라는 말이 각성된 문장으로 전해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아 있는 나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