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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우리가 모르는 사실

- 한국인 유일의 단독 방북 취재기, 진천규 글 그림


평양에는 도깨비가 살지. 절대 사람이 살지 않아.



흉측한 뿔이 머리통에서 삐져나와 송곳니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성난 눈을 부릅뜬 채 한 손으로 방망이질을 하고 있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일 기세야. 그들은 절대 사람이 아냐. 인간의 오장육부를 씹어 먹을 놈들이지. 절대 그놈들의 말을 믿으면 안 돼. 천하의 빨갱이들이지. 부모 자식도 모르는 흉악한 놈들이야. 그놈들은 탱크를 몰고 가서 모조리 깔아뭉개야 되는 족속들이지. 내 말에 토를 달면 니들도 똑같은 놈들이야.  저 어린 이승복이를 보지 않았어. 우리 학교 교정에 떡 하니 서 있는 동상 말이야. 어린아이가 얼마나 용감해. 총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하잖아. 어린아이가 얼마나 방공 정신에 투철한 거야. 이렇게 온 국민이 총화 단결해야 빨갱이 놈들이 또다시 남으로 내려오지 않는 거야.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


나는 그렇게 배웠다. 70년대와 80년대. 철저한 반공교육 시대.

북한이 아닌 북괴. 다시 만나야 할 동포가 아닌 때려 부숴야 할 적군이라고 배웠다. 북한은 호심탐탐 적화야욕을 노리는 늑대들의 소굴이며 그들은 적화통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산 괴뢰집단이었다.

아웅산, kal기 테러, 무장 공비의 습격과 간첩들의 남파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북한의 대남 책동은 우리들에게 깊은 레드 콤플렉스를 심어 주었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을 김일성과 김정일이 지배하는 우상 숭배의 나라이며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말살하는 1인 독재국가라고 배웠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학 진학 전까지 북한은 동포가 아닌 원수같은 깡패국가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의 정립과 함께 통일에 대한 시민 각계의 논의가 공론화되면서 민간 주도의 통일 논의가 확대되었다. 그중 독재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 대중은 1988년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하며 통일의 물꼬를 터게 된다. 그때 북한 바로 알기 일환으로 시작된 북한 관련 영화와 책, 노래 등이 대학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특히 주체사상에 대한 이해는 북한을 바로 알기 위한 바로 미터였다.

유일 독재 사상으로 만 알고 있던 사람 중심의 철학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은 이해 불가한 영역이다. 이런 민주 진영의 움직임에 반공 반통일 집단은 대대적인 검거와 탄압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몰래 훔쳐보던 북한 관련 사진은 충격이었다.

그들은 뿔도 도깨비 방망이도 없었다. 평양의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서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황석영의 말대로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다.


진천규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최근의 평양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북 취재기이다.


손 전화기로 사진을 찍는 것은 남한과 똑같다(사진 출처: 진천규)


최근 북한과 미국 간의 일측 촉발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극적으로 이뤄진 북한의 동계 올림픽 참여와 두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는 평화공존과 통일의 기운을 한반도에 불어넣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평양은 더 이상 도깨비들의 소굴이 아니며 우리가 왕래하지 못할 금단의 땅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정말 거기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 책을 통해 북한이 미국과 유엔의 초강도의 경제적 제재와 압박 속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핵무력과 경제 건설 병행이라는 국가적 전략을 버리고 인민의 경제 건설에 집중하려는 북한 지도자들의 실천적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택시를 타고 백화점에 들러 쇼핑하는 생활. 이곳은 서울이 아니라 평양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으며 알지 못했던 평양에 관한 경천동지 할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전체 8부로 구성된 이 책은 '평양은 통화 중', 냉면에서 피자까지, 백화점과 스타일, 려명거리 73층 아파트의 삶'편은 북한의 현재 실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의 여타의 북한의 취재기와 다름을 이야기한다.

" 나는 이전에 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이곳저곳 다니며 취재할 수 있었다. 나아가 서로 말이 통하는 만큼 평양 시민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사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할 수 있었다. 이 점이 다른 사람들의 평양 취재와는 차이가 있다."


평양 대동강변의 옥류관에서 쟁반 냉면을 먹고 있는 평양시민(사진 출처:진천규)


평양 시민들이 이딸리아 료리 전문식당에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고 코코아 향탄산 단물(콜라)로 입가심을 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강냉이 죽과 옥수수로 연명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생활양식은 우리가 상상한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300평의 경흥 맥주집에는 스탠딩 자세로 대동강 맥주 7종류를 마음 것 마실 수 있고 대동강변을 거닐며 청춘남녀 간 데이트도 즐긴다.  유명 문화유적지에는 가족들이 스마트 폰으로 서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하게 노니는 모습도 전한다.

려명거리에는 73층의 고층 아파트가 1년 만에 건설되고 그 입주 1순위는 철거민이라고 하는 믿지 못할 사실도 적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유엔의 고강도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대로 ’자력경생, 자력 자강의 힘으로 전진 비약하는 주체 조선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있으니 참 믿기지 않는 사실들이다.

사실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그들의  지난 10년 간의 발전을 모르고 지낸 셈이다.

글은 짧고 쉬우며 사진은 큼직큼직하게 찍어 단 번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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